0. 서론
시계 라인업의 구성은 언제나 어렵다.
일반적으로 시계를 보통 예물용으로 하나 크게 맞춘 후 관심을 끄는 일반인과 다르게 소위 시덕질 좀 하는 시계인이라면 한번쯤은 여러 개의 시계를 갖추고 싶어하고, 한정된 자원 하에서 최대한 다양하게 시계를 가져가고자 한다. 그러다보면 나오는 것이 소위 '드레스용 / 스포츠용' 의 이분법, '육/해/공'의 트리오, '육/해/공/드'의 콰르텟 등 다양한 구성의 라인업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한 일환에서 결국 시계인이라면 한번쯤은 만나게 되는 분야가 바로 이 '파일럿 워치'이다.
세계 대전 당시 공군 비행사들이 썼던 디자인의 DNA를 담았다는 감성, 심플하면서도 직관적인 디자인(크로노를 제외하면), 강한 항자성 탑재로 인한 생활의 편리함 등의 다양한 복합적 이유를 대긴 하지만 사실 뭐 그런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냥 지르면 지르는거지.
1. 파일럿 워치의 분류
자, 그래서 파일럿 워치를 사기로 마음을 먹고(사야한다고 세뇌를 끝내고) 정보를 찾다보면 파일럿 워치는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세계 2차 대전 기준, 영국군 시계와 독일군 시계가 그것이다.
영국 공군(Royal Air Force, RAF) 스타일의 시계는 상기와 같이 아라비아 숫자와 12시의 삼각형 인덱스 / 직사각형의 형태에 끝만 살짝 뾰족한 형태의 핸즈를 가진 시계를 가리키며, (+ Mark 특유의 화살표가 그려진 다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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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사용된 RAF watch는 WEEMS 시리즈나 6B/159 등을 언급하는 것이 맞으나 왠만한 밀덕이 아니고서야 이 분야 시계를 그렇게까지 찾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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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WW2 시계로 많이 언급하는 더티 더즌은 '파일럿 워치'가 아닌 영국 국방 인증 '밀리터리 워치'에 속한다. 물론 이는 이 나름대로 매력이 있지만 추후 따로 포스팅하기로...
나치 독일 공군 스타일 시계(B-Uhr, 비-유렌)는 상기와 같이 12시의 2개 점이 동반된 삼각형 인덱스와 / 뾰족한 화살표 모양 핸즈 스타일을 가진 시계를 가리켜 말한다. B-Hr 시계는 다시 디자인에 따라 A type 과 B type으로 구분되며, 상대적으로 간결한 스타일인 A type이 선호된다.
실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B-Uhr를 제작한 회사는 5개로 IWC, Laco, Swowa, Wempe, A.Lange & Sonne 이며 이들 A.Lange & Sonne를 제외한 나머지 브랜드는 현재까지도 활발히 파일럿 워치를 제작중이다.
오늘 탐방할 브랜드의 시계는 영국군과 독일군 시계 중 영국군 시계, 그중에서도 IWC 사의 마크 시리즈 이다.
2. IWC 마크 시리즈
IWC 사의 마크 시리즈는 태생적으로 이름부터 마크(Mark, 영국군 제식번호)에 기반을 둔 영국 국방부 군용시계에 뿌리를 둔 시계이다. 이름처럼 마크 15까지만 해도 영국 공군(RAF)의 스타일의 시계 스타일을 고수하였으나, 마크 16으로 넘어오면서부터 독일 공군(B-Uhr) 스타일의 다이얼 및 핸즈를 태용하며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물론 IWC사의 경우에는 박쥐처럼 세계 2차 대전 당시 영국군과 독일군 모두에 시계를 공급한 유일한 메이저 브랜드라는 점에서 그나마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기는 하나, 15에서 16으로 넘어올 때 엄청난 매니아들의 비난을 샀음은 물론이다. 골수 정통주의자까지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도 '마크'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 독일군 스타일의 시계를 만드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고는 느낀다. 물론 독일군이 격추하여 사망한 프랑스인이자, 어린왕자의 작가인 생텍쥐베리의 이름을 따서 독일군 시계 한정판으로 내놓는 등의 행보를 고려하면 IWC는 애초에 이런 것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내가 현재 고려하는 IWC 마크 시리즈는 11, 12, 15 세 가지이다.
마크 11은 명실상부 지금까지 생산된 군용 시계중 단언컨대 최고의 시계중 하나로, 전설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시계이다. 마크 10 때 처음으로 군납으로 사용되었고 실제 WW2에서 사용된 것 역시도 마크 10이지만, 전쟁 이후 영국 공군에서 최종적으로 수십년 이상 채택하여 사용한 시계이며 항자성 확보를 위해 최초로 연철 케이스를 사용한 시계이기도 하다. IWC에서도 이를 알고 있어 Mark 18 당시에는 'Tribute to Mark 11', 즉 '마크 11 헌정 한정판'을 만들기도 했을 정도.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수동무브먼트였으며, 로고의 필기체 IWC는 호불호가 있는 영역이다.(이를 더 좋아하는 수집가들도 많다. 다만 나는 드레스워치가 아닌 마크에서는 IWC 라는 글자가 더 간결하게 느껴져서 불호)
마크 12는 민간용으로 판매된 첫 마크시리즈로, 예거 르쿨트르의 cal 889 베이스의 cal 884라는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탑재한 시계였다. 12시의 로고가 IWC로 변경된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마크 11의 디자인을 그대로 계승하였기에 보다 실생활면에서 더 편리한 시계라고 할 수 있다.
마크 15는 RAF 디자인을 잇는 마지막 마크시리즈로, 기존 36mm의 사이즈를 38 mm로 2mm 증가시킨 것 외에는 디자인적으로는 거의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으나 무브먼트를 기존 예거 무브먼트에서 ETA 2892-A2 베이스로 변경했다는 단점이 있다. 범용무브먼트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 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예거 cal 889도 따지고 보면 범용급으로 쓰던 무브니까) ETA 2892는 특유의 얇은 두께를 위해 와인딩 효율을 극도로 포기한 무브먼트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불호라서 패스.(마크 17을 방출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 ETA 2892 기반이면 일단 거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했을 때 나의 마크 시리즈 원픽을 고르라면! 단언컨대 마크 12(Mark XII)가 된다는 것이다.
3. 그래서 결론은?
절대적인 가격의 지표가 될수는 없겠지만, 크로노 24 기준 현재 Mark 12의 중고거래가는 700-1000 사이를 형성하고 있다.
1994년에 발매되어 1999년 단종된 시계의 가격이라기에는 분명 엄청나게 비싼 가격.
물론 역사적 가치와 디자인 계승의 정신, 짧은 기간 생산 등의 희소성 등을 고려한다면 누군가에는 비싸지 않은 가격일지도 모르겠으나, 나의 경험을 미루어봤을 때 이러한 소위 '뽕에 빠져서 사는 고물 시계'의 경우에는 오래가지 못하고 질리던 것이 다수인지라 구매까지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간결한 디자인이 분명 내 스타일인 것도 맞지만 다른 내 시계들 역시도 대부분 간결한지라 IWC에서 산다면 차라리 파일럿 크로노그래프 시리즈를 사는게 맞나 싶은 생각도(물론 이럴거면 블랑팡 파일럿 크로노그래프로 가겠지만) 드는 것도 하나의 구매 저지요소. 마크 18 때처럼 현행 Mark XX에서 Mark 11 헌정 기념 한정판이 나온다면 그것을 노리는 것이 나을 것이란 내 생각이다.
IWC Mark XII (Ref. IW324101)
사이즈 : 36mm
두께 : 10.5mm
방수 : 5 ATM
소재 : 스틸
무브먼트 : cal 884/2(JLC cal 889 베이스)
파워리저브 : 40hr
리테일가 : 단종
중고가 : 700 -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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