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브랜드, 모델명
브레게 (구) 마린 ST5817 청판
ref. 5817st/y2/5v8
2. 시계 사양
무브먼트 : 브레게 cal 517GG
- 파워리저브 65hr
- 자동 무브먼트, 빅데이트 모델, 4.0Hz
- 프레드릭 피게 cal 1150 베이스 무브
케이스 크기 : 39mm / 두께 11.8mm
러그 사이즈 : 20mm
러그 투 러그 : 51mm
방수 : 100m
소재 : 스테인리스 스틸
3. 들이게 된 계기와 경험담
시계생활을 처음 시작할때만 해도 시계 라인업을 갖출 때 소위 '구색 맞추기'를 중요시하였다.
육/해/공 라인업을 만든다던가, 흰판/검판/청판을 만든다던가 하는 점에 집착하기도 하였고, 하나라도 모자란게 생기면 어서 나머지 하나를 빠르게 채워야 할 것 같은 불안감에 차기도 했다. (이전 리뷰한 마크 17 어린왕자도 어느정도는 그러한 점이 반영된 기추였다)
시계 생활을 지속하면서 이러한 강박증은 어느정도 해결되었고, 특히나 롤렉스 구그린섭을 기추한 이후로는 스포티/케쥬얼을 확실히 담당하는 시계가 생겼기에 청판시계에 대한 욕구가 그리 높지 않게 되었다.(고 믿었다.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그러나 우연히 장터에서 브레게 (구) 마린 청판 매물을 보게 되었고, 순간적으로 눈이 돌아가 굉장히 빠른 자기합리화의 과정을 거치고 나니 어느새 판매자와의 거래 약속을 잡고 있는 나를 발견해버렸다. 그리고 채 6시간이 지나지 않아, 이 시계는 내 손목위에 올라오게 되었다.
굉장히 충동적인 기추였지만, 이전 원탑 시계를 물색하던 과정에서 검판으로 많이 알아봤던 시계였기 때문에 돌고돌아 오히려 원하던 시계로 온 느낌이 들어서 만족스러웠다. 시계 생활을 시작할때부터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모델이었기에 내 손목에 올라온 것을 보고 나니 드림워치를 기추한 것 같은 감격도 들 정도.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던 것은 아름다운 다이얼.
빨려들어갈듯한 느낌의 회오리치는 중앙의 기요쉐 다이얼, 양각 로만인덱스가 위치한 중앙의 흰색 동심원 및 색깔 깔맞춤이 된 빅데이트 날짜창, 그리고 제일 바깥쪽의 도트 미닛마커까지, 무엇하나 과하거나 부족함 없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느낌이었다. 옆면의 코인베젤, 그리고 뒷면의 회오리 마감 골드 로터까지 더해지니 소위 얼굴하나는 어디서도 꿇리지 않는 모델이란 생각이 들었다.
브레게 시계다운 클래식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드레시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스포티함을 가지고 있는, 소위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시계인 것도 장점. 12mm 미만의 두껨 + 로만인덱스를 가진 시계이기에 데드 드레스만 아니라면 적당히 포멀한 복장에도 잘 맞았고, 100m 방수 + 러버밴드의 조합이기에 반팔에 차고 다녀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필립 스턴이 제랄드 젠타에게 요구했던 '방수기능이 있는 진짜 스포츠워치이면서도 디너자켓에 어울리는 디자인' (그리고 이 시계는 노틸러스가 되었다) 의 조건에 진정으로 부합하는 하이엔드 스포츠워치는 이 마린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 정도.
4. 방출한 이유
그러나 이 시계도 결국 방출하게 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2가지가 있었는데..
1) 특유의 긴 러그, 그리고 긴 러버밴드로 인한 불편한 착용감
많이들 알고 있듯, 브레게 마린은 러그 투 러그가 꽤나 긴편인데, 거의 꺾이지 않고 직선에 아까운 느낌이라 손목너비가 충분하지 못하면 불편감이 있는 타입이다. 평평하다고는 하지만 분명히 튀어나온 사파이어크리스탈 케이스백은 덤.
여기에 더불어 청판의 경우에는 스트랩 옵션이 러버밴드로만 나오고, 브레이슬릿은 300만원 가량의 별도 금액을 내고 따로 구매하여 조합해야만 한다. 즉 제치밴드는 러버밴드라는 뜻. 그런데 이 브레게의 러버밴드는 유난히 긴편이라서, 16.5cm의 손목을 가진 내게는 XS 사이즈의 스트랩을 착용해도 가장 마지막 칸에 껴야했다. 그렇게 되다보니 버클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어 손목에서 헛돌듯 회전하게 되어서 장시간 착용하다보면 불편감이 많이 남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브레이슬릿으로 착용해볼까도 했지만, 무게감이 상당하다는 평과 더불어 300만원의 가격을 줄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들어서 결국 브레이슬릿 추가는 포기.
2) 특정 광원과 각도에서만 예쁜 다이얼
사실 이건 많은 청판 시계들이 공유하는 특징이기도 한데, 특정 광원(주로 자연광) 아래에서의 특정 각도에서만 빛나는 깊은 색감의 청판 느낌이 나고, 평소에는 위의 사진처럼 검은색에 가까운 군청색 느낌에 가까웠다. 청판을 제외하고 봐도 물론 좋은 시계이지만, 가끔 청판 느낌이 나도록 이리저리 손목을 돌리면서 사진을 찍거나 어플을 통한 후보정을 하다보면 이게 뭐하는 짓인지 하는 현타가 오기도 했다.
위의 단점들과 더불어 높이 단차가 거슬리던 빅데이트 날짜창, 너무나도 약한 야광, 한번에 잘 안잠기는 스크류다운 크라운 등 사소한 실사용면에서의 불편감이 더해지다보니 막상 실생활에서는 잘 안차는 시계가 되었다. 드레스/스포츠로 두루두루 차려고 했는데 드레스를 찰일이 있으면 삭소니아씬 같은 정통드레스워치를, 스포츠를 찰 일이 있으면 바티스카프나 그린섭마를, 둘다 어느정도 필요하면 리베르소를 차다보니 딱 맞는 포지션을 잃은 느낌? 결국 보관함에서만 방치되어가던 것을 보고 방출하게 되었다.
5. 교훈
나의 한때 드림워치에 가까웠고, 오래전부터 고려한 요소들이 잘 부합하였기에 영구귀속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채 2년을 가지 못하고 방출한 시계.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좋아하고 찾는 시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계가 내게 잘 맞는 시계는 아니란 것을 깨닫게 해준 시계.
좋은 시계임은 분명하고 어느 누군가에게는 최적의 인생시계일 수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아니었던 아쉬운 시계.
결국 경험해봐야만 그 시계가 정말 좋은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시계.
교훈
'좋은 시계'라고 해서 '내게도 좋은 시계'는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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