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영국의 마술사이자, 세계적인 거장 멘탈리스트 중 하나인 데런 브라운(Derren Brwon)가 2018년 진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희생'이다.
데런 브라운은 심리학을 기반으로 하여 암시, 최면, 행동 유도와 감정 주입 등의 장기를 기반으로 하여 퍼포밍하는 유심론자(Mentalist)로 BBC 방송 등을 통해 이미 이름을 알린바 있는 마술사이다. 자신이 하는 것은 오로지 두가지,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정보를 얻는 것과 사람에게 특정 정보를 주입하는 것 뿐이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관객에게 행동을 유도하는 연출로 유명하다. 관객이 도둑질을 하도록 만들거나, 고소공포증이 있던 사람이 번지점프를 자발적으로 하게 하는 것, 그리고 관객이 고양이를 죽이는 버튼을 누르게 유도하기까지, 일반적인 마술과는 사뭇 다른 양상의 퍼포밍을 보여주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본 작인 '희생' 역시 비슷한 플롯을 가진 연출 실험이다.
여러 조건과 상황이 주어졌을 때 과연 사람은 어떤식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에 관한 질문과 대답이다.
https://youtu.be/bpUpNv9uNSI?si=aRBgQNa6hVQINg6M
줄거리(스포 많음)와 감상
본 스토리는 평범한 미국인 남성인 '필'에 관한 이야기이다.
불법 이민자를 싫어하는, 인종차별주의자인 '필'은 자발적으로 데런의 실험에 참여한다.
목 뒤에 마이크로칩을 이식하고 매일 앱을 통해 명상과 생각을 반복하며 그는 스스로의 생각을 바꾸는 과정을 겪는다.
바늘로 살을 통과하지만 고통을 못느끼는 실험부터 시작해서 고소공포증을 가진 그가 강물점프를 시도하는 실험, 이민자를 극혐하던 그가 먼저 아랍인 이민자에게 다가가 눈물을 흘리며 포옹하는 실험을 거쳐 마지막으로 전혀 모르던 남을 위해 대신 총을 맞는 도전까지. 그의 변화는 점진적이며 끝에 이르러서는 찬란하기까지 하다.
50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매 단계마다 생각해볼만한 점들이 많았다.
첫번째로 임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목 뒤에 삽입하는 '마이크로칩의 존재'이었다.
실제로 삽입하지는 않았을 지언정 마취와 절개, 봉합과정을 거쳤기에 필은 본인이 마이크로칩을 이식받았다고 생각할수밖에 없다. 데런이 설명하는 전문적인 작동원리와 기전에 대한 설명은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행동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겠지만, 실제로 무언가가 삽입되어 있다고 몸으로 느끼는 순간 행동 변화의 가능성이 올라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점에서 실험설계를 디테일하게 잘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제로 무해한 무언가를 삽입했다면 더더욱 효과는 증가되었겠지만, 감염관리 측면에서 꽤나 어려운 일이니 그렇게 하지는 못했겠지.)
강물에 뛰어드는 점프 시도 실험에서는 반대로 약간 실망을 했다.
많은 최면이론에서 설명하듯, 최면으로 '자신의 생명에 지장이 갈 수 있는 행동임을 자각한 상태에서 그 행동을 유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리 여러 과정을 통해서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공포와 고통을 없애는 최면을 할 지언정, 로프 하나 달아주지 않고 점프 슈트만 입고 10m 이상의 높이에서 강물에 뛰어들게 하는 것이 성공했다면 오히려 조작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DNA를 통한 뿌리 찾기는 적어도 내게는 진부했다.
인류의 조상과 기원 찾기는 오로지 미토콘드리아DNA를 통한 모계유전으로 찾기에, 2000년대 초 휴먼 게놈 프로젝트 완료 이전부터 이러한 뿌리찾기는 널리 진행되어 왔다. 나아가 DNA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여러 행적을 통한 뿌리찾기 TV 쇼 등은 미국에서 오래전부터 방영되어 왔을 정도이기에 필이 자신의 DNA에, 자신이 혐오하던 멕시코인의 DNA가 포함되어 있음에 놀라는 것은 상당히 작위적이라고 느껴졌다. 특히 그 비율이 1%도 안되었기에 이 점에 놀라서 스스로를 생각해보는 것은, 적어도 내겐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미국이라는 인종의 샐러드 국가의 사람이 자신이 퓨-어한 백인종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야말로 넌센스가 아닐까.
다만 포옹 실험 자체는 나름 인상적이었다.
물론 해당 상황처럼 누군가와 10분간 말없이 서로 눈을 마주치는 상황이 생기면, 그 상황 이후로는 서로 호감도가 증가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혐오하던 민족의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고 편견이 사라지며, 그를 안아주고 싶어하는 단계까지 이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필이 태생적으로는 착하고 남을 위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인물이었기에 가능했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저런 상황이었다면, 나는 눈물을 흘리며 포옹하지는 않았을테니까.
마지막 실험인, 총 대신 맞기 부분은... 잘 모르겠다.
분명 어떤 방식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 메세지를 주고 싶었는지는 분명히 알거 같지만, 본질적인 흐름 외의 요소들이 내게는 너무 거슬렸기 때문이다. 필에게 사전설명 없이(당연히 없어야겠지만) 이미 끝난것으로 통보했던 실험을 이어간 점, 술집에서 싸우던 멕시코인(영어를 못하는거처럼 연기하던) 사람이 아닌 다른 멕시코인(영어를 잘하는)에게 총을 겨눴기에 필이 더 공감을 잘하지 않았을까라는 점, 총을 겨누기 전 최소한의 주먹질이나 폭력조차도 보이지 않고 필이 내리기 전까지 수 분동안 총을 그냥 겨누기만 한점, 차에서 나온 익숙한 멜로디의 작위성 등등... 소위 '여기서 우셔야 합니다' 등의 플롯으로 진행되는 느낌이 들어서 마무리가 아쉬웠다.
하지만 내게 제일 인상깊던 장면 역시 이 총 대신 맞기 부분에서 나온다.
바로 필이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퉁퉁 두번 두드리는 장면이다. 이 시리즈를 본 사람만이 이 행동의 의미를 알겠지만, 그 긴박한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한 이 행위는 그가 성공적으로 이미 영웅이 될 준비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가 이 행동을 무의식중에 했는지, 인위적으로 만들어져서 한건지, 모든 상황을 알아채고 고의적으로 한것인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종전의 그에서 한발짝 나아가 남을 돕는 사람이 되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소감정리
이 시리즈를 다 보고 난 느낌은 한마디로 '인간의 무지와 편견, 그럼에도 인간 예찬' 이다.
인간이 얼마나 무지하며,그 무지를 기반으로 한 신뢰라는 이름에 갇혀 얼마나 무서운 편견을 가지고 살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편견이 부숴질 때 인간은 얼마나 더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인상적인 한편의 시리즈였다.
한편의 이런 영상이 누군가의 삶이나 인생을 통채로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아주 조그마한 자극의 날개짓이 먼 훗날의 태풍으로 바뀔 수 있다고는 믿기에,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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