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서론
대한민국의 마술사이자, 히든점스의 일원인 엄준혁 마술사의 신작, 'NCM 2,3,4'에 대한 리뷰이다.
누차 얘기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활발하게 렉처를 내고 있는 마술사 중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마술사이기도 하고, 그만큼 마술을 잘 '가르치는 사람'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그의 렉처가 나오면 거의 무조건 바로 구매하는 편이다. (따라서 이 리뷰 역시 어느정도는 그런 bias가 적용되어 있을 수 있다)
이 렉처는 2022년 렉처노트에서 발매한 NCM 1의 후속 시리즈렉처이다. Named Card Miracle(NCM)이라는 현상에 대해 그가 생각하는 여러 접근법과 기법들을 시리즈로 발매중으로, 예전 그의 발언에 따르면 추후 NCM 10까지 낼 생각이 있다고 한다. 각설하고, 본 리뷰로 들어가도록 하자.
1. NCM의 정의에 대하여
시작은 그가 생각하는 NCM에 대한 정의로부터 시작한다.
(그의 이전 렉처들인 NCM1 혹은 라세프 아모리 등을 보았다면 이미 대부분이 알겠지만 정확한 개념과 현상에 대한 이해의 시작이 이 NCM 시리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카드마술에서 등장하는 보통의 '카드가 변하는 현상'은 아래의 순서로 진행된다.
1) 관객이 카드를 물리적으로 고른다. (+ 그후 그 카드를 덱 안에 넣고 다시 섞는다)
2) 덱으로부터 한장의 카드가 분리된다.
3) 분리된 카드가 관객이 고른 카드로 변한다.
엄준혁 마술사는 여기서 '관객의 카드가 있는 공간'과 '카드가 변하는 공간'이 일치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아래의 새로운 플롯을 생각하였다.
1) 덱으로부터 먼저 카드 한장을 분리한다.
2) 관객이 물리적으로 카드 한장을 고른다.
3) 이미 분리되어 있던 카드가 관객이 고른 카드로 변한다.
간단히 보면 위의 기존 카드 마술에서 1번과 2번의 순서를 바꿔 재배치한 것이지만, '이미 분리되어 있던 카드'가 추후 관객이 고른 카드로 변하기 때문에 기존의 카드가 변하는 현상보다 더 '불가능해보인다'는 장점이 있다. 그는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갔다.
1) (관객이 카드를 선택하기 전에) 덱에서 먼저 카드 한장을 분리한다.
2) 관객은 (물리적인 방법이 아니라) 머리속으로 카드 한장을 생각하고 말한다.
3) 이미 분리되어 있던 카드가 관객이 생각하고 말한 카드로 변한다.
위의 과정이 바로 '이미 공개되어 분리되어 있던 카드가 관객이 말한 카드로 변하는 기적같은 현상', 즉 'Named Card Miracle'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렉처에서 이 현상이 기존의 체인지 현상보다 더 우월하거나 뛰어나지는 않으며 그저 플롯/개념의 형태를 제시했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관객이 느끼는 불가능함의 정도'면에선 확실히 기존 현상보다 더 우월하다고 난 생각한다. 나아가 비단 이러한 체인지 현상에 국한짓지 않더라도, 그가 연출을 구성하는 생각과정이나 방식을 배우는 것 역시 이 렉처의 정수라 생각하기에 넘기지 말고 꼭 보기를 추천한다.
이제부터 구체적으로 어떤식으로 위의 NCM 현상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들어가기에 앞서 NCM 2,3는 연출영상이 공개되어 있다. 아래의 링크를 통해서 영상을 먼저 보고 리뷰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https://youtu.be/yxkPJnLksbQ?si=fRc4bhWZvOeSeu7D
2. NCM 2
현상) - 자세한 연출은 위의 영상 참조
관객은 덱에서 카드 한장을 고른 후 본인만 보고 기억한다.
관객이 고른 카드를 카드박스 안에 넣는다. (카드박스는 관객이 미리 확인할 수 있다)
관객은 자신이 고른 카드 말고 전혀 다른 카드를 생각하고, 여러번 바꾸기도 한다.
최종적으로 관객이 생각한 카드를 말하고, 마술사가 신호를 주고 카드 박스를 열면 관객이 생각한 카드로 바뀌어 있다.
마술의 해법 자체는 카드마술을 오래 한 사람이라면 떠올릴법한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진행이나 기술/해법적 요소에서도 많은 기대를 한 사람이라면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술 연출에서의 스토리텔링이 굉장히 훌륭하며, 멘탈리즘에 대한 요소, 미스디렉션의 구성과 타이밍에 대한 설명이 튼튼하기에 이를 단순히 '해법만 보고 넘어가기'에는 굉장히 많은 내용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마술렉처, 서적에서도 강조하듯 '해법'은 '마술'의 절반도 차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자.
또한, 실제 관객이 신비함을 느끼는 점에서는 그 어떤 카드 마술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현란한 손기술이나 눈 앞에서의 비쥬얼함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이러한 담백한듯 차분한, 그러나 신비함이 증폭된 마술은 언제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쉬운 점도 몇가지 있다. 우선, 관객이 어느정도 백트래킹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감히 이런말을 하면 지탄받을 수 있겠지만, 이러한 멘탈리즘적 요소가 들어간 마술은 관객이 '똑똑할수록' 잘 안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라 생각한다. 연출의 스토리 면에서도 연출자가 이미 충분한 마술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어느정도 주지시킨 후에야 흐름이 보다 자연스러워진다는 점이 아쉬웠다.(패터상으로도 이 마술을 여러번 보여준 적 있는 관객, 혹은 연출자가 꽤나 마술에 익숙해보여야 가능할 것이다) 이 말인즉, 기술적 난이도와 별개로 카드마술의 초보자가 이 연출을 그대로 시연하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3. NCM 3
연출) - 자세한 연출은 역시나 위의 영상을참조
연출자는 마술사들이 종종 하는 유치한 농담 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이에 대해 몇번 시연을 한다.
그리고 연출자는 이것이 사실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일임을 보여준다.
내가 이 렉처, 나아가 엄준혁 마술사의 모든 기존 발매 렉처 중 연출면에서 원탑으로 뽑는 마술이다.
실제 그의 공연을 보거나 세미나를 들었을 때 느꼈던 인상과 굉장히 유사하다고 느껴지는 연출인데, 알고보니 이 연출이 NCM 4보다 실제로는 더 나중에 만들어진, 즉 현재 그가 퍼포밍하는 연출과 가장 닮아있는 형태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역시나 해법/기술 면에서는 '에이 뭐야, 새로운 것은 없네!'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수 있다.
혹은 '연출이 너무 길고 지루해!'라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연출에 대해 이렇게밖에 생각못하는 사람이라면, 감히 말하건대 '마술을 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 이라고 생각한다. 마술은 '관객'이 존재해야 성립하는 공연 장르이다. 당신이 해야할것은 관객에게 '와.. 레이즈 라이즈를 어떻게 저렇게 하지'나 '언더토우를 실전에서 저렇게 하네...'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와.. 이건 기적이다..'라고 느끼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굳이 더 첨언하면 사족이 될까 하여 고민했지만 그래도 리뷰이니 더 적자면, 기술적으로도 이 시리즈 중 가장 쉽다는 것도 장점이다. 소위 기술만 치면 '5분 연습하면 끝난다'라고 생각할수도 있을 정도이다. 연출의 스토리 역시 그대로 써도 좋지만, 렉처 내에서 알려주는 여러 바리에이션이나 본인의 경험담/관심분야를 첨가한다면 그 어떤 자리나 공연에서도 훌륭한 마무리 역할을 수행해줄 것이라 믿는 마술이다.
4. NCM 4
이 연출은 발매자인 엄준혁 마술사가 공개하지 않기로 하였기에 나 역시 연출을 상세히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
엄준혁 마술사 본인의 말에 따르면 '그동안의 NCM 중 가장 진화된 형태'라고 한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은 격하게 공감할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반론을 펼칠 수도 있는, 소위 호불호가 갈릴 마술이라고 생각한다.
나 개인적으로는 역시 NCM 4보다는 NCM 3가 취향이긴 하지만, NCM 4 역시 훌륭한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류의 렉처를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는 NCM 2, 3보다 더 가져갈 것이 많을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이런류의 마술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미 다 아는 기법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디테일과 그만의 연출의 구성과정에서의 고민과 생각흐름은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놈의) 해법/기술 면에서는 역시 매우 특별한 것은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위에서 말했듯 굳이 더 말해 뭐한가 싶으니 이만 줄이겠다.
5. 종합 및 총평
NCM 2, 3, 4 렉처의 리뷰가 정리되었다.
기존의 엄준혁 마술사의 렉처들인 '아르카나 이안 콜렉션', '파워플레이', '파이어워크' 등을 생각하고 새로운 기술이나 기법을 배울 생각에 들떠서 이번 렉처를 본다면 분명 실망할 사람들도 여럿 있을것이다. 다만 이런 기법이나 해법의 틀에서 벗어나 '관객에게 신비함과 기적 같은 경험'을 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막과도 같은 국내 렉처 시장 속 오아시스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렉처에서 배운 내용을 그대로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것도 좋지만(따라하기만 해도 이미 훌륭한 연출일 것이다) 나아가 본인의 스타일로 재구성하거나 본인만의 연출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이 봐도 만족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전에 리뷰한 '라세프 아모리'의 아쉬운점들이 모두 해결된, 또다른 나의 애착 렉처가 생긴 것에 아주 만족을 느끼며 이번 리뷰를 마무리한다.
총평 - 기법을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엄준혁 마술사의 노고에 박수를
총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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