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어떤 시계가 '좋은 시계'인가?
이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관점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
시계의 튼튼함, 아름다운 디자인, 좋은 마감과 재질, 시계의 가격과 브랜드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도 '정확성'이라는 항목이 결코 배제될 수 없다는 점에는 대다수가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계의 본질은 결국 '시간의 측정'이기 때문에, 얼만큼이나 정확하게 시간을 표시해주는가는 시계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며, 시계의 발전은 결국 정확성의 증가를 위한 여러 시도와 함께 그 역사를 함께 하고 있다.
(물론, 쿼츠의 발명과 보급화가 이루어진 1970년대 이후, 특히나 90년대 이후로는 새로운 관점도 등장하지만, 그것은 추후에 논의하도록 하겠다.)
그렇다면, 시계의 '정확성'이란 무엇인가? 지난 글에서 본 기계식 시계의 구조에 대해서 다시 잠깐 살펴보면...
기계식 시계는 위와 같이 메인스프링에 '저장된 에너지'가 휠트레인을 타고 '전달되어' 이스케이프휠과 밸런스휠을 통해 일정한 시간 간격을 가지고 '틱톡하며 풀리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시계의 정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마지막 부분인 '틱톡', 즉 이스케이프먼트와 밸런스 휠이며 이 부분이 얼마나 정확하게 돌아가게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계의 정확성을 맞추는 일을 조정(Adjusting)이라고 하고, 대부분의 시계 무브먼트에 적혀 있는 문구들 역시 여러 과정을 거쳐서 시계가 조정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계의 조정과정은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가장 대표적인 요소들이 자세차 / 온도차 / 자성여부 / 등시성 이다. 오늘 다룰 것은 이중 마지막인 등시성(Isochronism)에 대해서 다루도록 하겠다.
등시성
등시성은 간단하게 말하여 시계의 태엽이 최대로 감겨있을 때와 거의 다 풀렸을 때의 오차를 조정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시계의 메인스프링이 최대로 감긴 상황에서는 풀리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휠트레인도 더 빠르게 풀리려 하고, 나아가 밸런스 휠에도 강한 토크가 작용한다. 이는 밸런스 휠(정확히는 헤어스프링)이 뒤틀려 감기는 정도가 더 커지게 되는 것이고, 이를 우리는 '진동각이 커진다'라고 표현한다.
진동각이 커지게 된다는 것은 진동하는 폭이 커진다는 뜻으로, 더 많은 거리(각도)를 회전해야 하기 때문에 소위 팔렛포크가 닿는 '틱'과 '톡'의 사이 간격이 멀어져 시간이 느리게 된다.
메인스프링이 점점 풀려가게 되면, 풀리려하는 힘이 약해지기 때문에 결국 진동각이 작아지게 되고, 이는 '틱'과 '톡' 사이의 간격이 짧아져 시간이 더 빨라지게 된다.
즉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시계의 태엽이 풀려갈수록 에너지가 떨어지니 시간이 점점 더 느리게 가겠지?'라는 생각과 반대로, 시계는 '태엽이 풀릴수록 시간은 더 빠르게 간다' 의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결국 등시성을 위해서 이러한 태엽이 최대로 감긴 상황에서 시계가 느리게 흘러가는 것과 태엽이 거의 풀렸을 때의 오차를 보정하여 최대한 오차를 없애주는 방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때 한가지 유의할 점은 자연스럽게 시계를 차는 과정에서의 오차가 0이 될수 있도록 맞추면 될 뿐, 두 시점의 절대적인 오차 자체가 동일하게 맞출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태엽이 풀로 감겨 있을 때에는 시계가 느리게 가서 -오차를 보이게 하다가, 자연스럽게 풀리게 되어 +오차로 넘어가게 되면 두 오차가 서로 상쇄되어 0이 되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시계의 등시성 유지를 위한 조정은 각 시계마다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우선, 수동시계와 자동시계로 나누어서 설명해보면..
수동시계 - 아침에 풀 와인딩시 - 오차 > 활동하면서 특별히 감지 않으면 태엽이 점점 풀림 > 저녁에는 + 오차 = 상쇄됨
자동시계 - 밤새 풀린 시계를 아침에 차면 + 오차 > 활동하면서 자동으로 태엽이 감김 > 저녁에는 - 오차 = 상쇄됨
이라는 것이다. 자동시계의 경우에도 소위 '태엽이 감기는 효율'에 따라서 등시성 조정의 차이가 발생한다. 와인딩 효율이 좋기로 유명한 롤렉스 3135 무브먼트와 나쁘기로 유명한 ETA 2892로 예시를 들면..(약간의 극단성을 부여하면)
롤렉스 3135 :
와인딩 효율이 좋아서 같은 활동시 더 많이 감김 > 매일 착용한다고 하면 대부분이 풀로 감긴 상태 > 풀로 감긴 상태(100%)와 절반쯤 풀린 상태인(50%) 사이를 와리가리한다고 생각하고 75%쯤 풀린 상태에서 0이 되도록 +-를 조정
ETA 2892
와인딩 효율이 나빠서 같은 활동시 더 적게 감김 > 매일 착용한다고 해도 활동성이 떨어지면 0까지 풀리기도 함 > 풀로 감긴 상태(100%)와 다 풀린 상태(0%)의 중간인 50% 풀린상태에서 0이 되도록 +-를 조정
위와 같은 차이를 두고 조정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극단적인 예시일 뿐 실제로 저 정도로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이렇게 메인스프링이 풀림에 따라서 시계의 등시성이 깨지는 것을 막기위해서 다양한 시도들이 있어 왔다. 여러 시도 중 가장 대표적인 시도 2가지는 '메인스프링의 구조 변화'와 '헤어스프링의 변화'였다.
메인스프링 구조 변화
메인스프링이 풀려감에 따라서 토크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등장했던 구조적인 변화들이 있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메인스프링을 나선형태가 아닌 S자로 만든 형태이며, 이는 시계가 거의 다 풀려갈때쯤에는 추가로 더 풀리는 힘을 주는 방식으로 에너지전달의 균일성을 얻어냈다.
그외에도 역사적으로는 Stopword, Stackfreed, Fusee, Remontoire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메인스프링의 풀리는 정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시도를 해왔다.
헤어스프링의 변화
위의 메인스프링 방식은 '어떻게 에너지를 균일하게 전달할 것인가'에 집중했다면, 이 헤어스프링은 '어떻게 다른 에너지가 전달되어 와도 팔렛포크를 밀어내는 간격을 일정하게 할 수 있을까'에 집중하여 변화되었다. 이 역시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가장 유명한 방식은 브레게 오버코일이다.
위의 그림처럼 브레게 오버코일은 밸런스 스프링(메인스프링이 아니다!)의 한쪽 끝을 위로 휘어서 고정시켰고, 이를 통해 메인스프링의 풀리는 정도가 달라지더라도 임펄스핀이 움직이는 정도를 균일화하여 팔렛포크를 같은 간격으로 밀어내게 하는 방식을 얻기도 하였다.
롱파워리저브
요즘 시계 트랜드인 '롱 파워리저브'에서 등시성은 더욱 중요하다. 파워리저브가 크다는 뜻은 결국 배럴이 더 크고, 전체적인 메인스프링 역시 커질수 밖에 없기에 와인딩이 얼마나 풀렸냐에 따라서 토크의 차이 역시 더 커질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으로는 배럴을 두개 배치한 더블 배럴 방식이 있다.
배럴이 두개가 되었으니 에너지가 2배! 라는 점도 이점이지만, 앞서 말했듯 하나의 큰 단일 배럴보다 작은 두개의 배럴은 풀려감에 따라서 생기는 오차의 정도가 작아지게 된다는 점 역시 이점이다. 심지어 몇 브랜드에서는 더블배럴을 도입했음에도 정확성을 위해 파워리저브를 늘리지 않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정리
이렇게 이번 글에서는 시계의 조정, 그중에서도 등시성을 위한 여러 장치와 요소들을 살펴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시계의 조정을 위한 두번째 단계인 자세차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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