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대한민국의 멘탈리스트 민스킴이 발매한 렉처 'Take What You Need From Me' 리뷰이다.
그동안 아르카나, 렉쳐노트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서 렉처를 발매한 민스킴이지만, 이 렉처는 기존의 렉처들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기존의 렉처들이 하나의 신박한 방법이나 기법, 원리에 기반하여 제작된 연출들의 소개였다면, 이번 렉처는 하나의 기존 원안 연출을 테마로 잡아 한 연출을 어떻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형하는지에 대한 과정의 소개라 할 수 있다. 렉쳐노트에서 구매 가능하고, 가격은 3만원이며 러닝 타임은 총 2시간.
본 렉처의 리뷰에 앞서 한가지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연출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곧 해법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은 모든 마술의 숙명이지만, 멘탈마술 관련해서는 이러한 점이 더욱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본 렉처의 경우 원안을 자신만의 마술로 바꾸는 모든 단계(총 9단계)에서 들어가는 수많은 디테일들 하나하나가 해법과 직결되는 감이 없잖아 있으며, 연출 자체를 공개하지 않음을 넘어서 렉처 내에서도 연출을 가장 마지막에 배치하고 있다. 따라서 본 렉처의 리뷰 역시 어느정도 두루뭉술하고 붕 뜨는 듯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는 점을 이해바란다.
Take What You Need From Me
이 렉처는 S.Lawrence 마술사의 Before Your Very Eyes라는 원안에서 시작한다. 원안의 연출은 아래와 같다.
연출)
관객은 덱에서 적당량의 카드를 꺼내서 패킷을 만든다.
관객은 만든 패킷 중 한장의 카드를 기억한다.
연출자와 관객은 패킷을 각자 적당히 섞는다.
연출자는 관객의 카드를 맞출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관객이 생각한 카드를 연출자가 맞추는 'Think of a Card' 플롯인 이 연출은, 설명을 일부러 두루뭉술하게 적긴 했지만, 굉장히 애매모호한 연출이다. 마술이 성립되기 위한 중심적인 아이디어는 있지만 실제로 시연하기 위한 세부적인 디테일들이 빠져있고, 연출의 당위성 역시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민스킴은 원안의 각 부분들을 하나하나 해체하여 분석 후 그가 생각하는 여러 요소를 추가하여 수정하는 과정들을 총 9단계에 걸쳐서 설명하고 있다.
모든 과정에 대해서 설명하긴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인상깊던건 Step 1, 5, 9.
Step 1에서는 가장 첫 과정인 '선택과정에 대한 개선'을 다루고 있다. 기존에 나는 관객이 적당량의 카드를 가져가서 패킷을 만들라고 지시하면 충분히 'Fair'하여 관객은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것을 관객입장에서 다룬 관점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관객 입장에서 충분히 공정하고 무작위하게 느끼기 위해 추가한 이 스탭은 상당히 간단하지만 대단히 효과적이다.
Step 5는 '설득과 셔플'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실 관객이 자신의 패킷 중 하나를 그냥 기억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굳이 섞어야 할 필요가 없다. 마술사가 관객의 반응을 보고 맞출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장담컨데, 관객들은 그것 역시 대단히 신기해할 것이다. 심지어 본 연출이 근본적으로 'Think of a Card' 플롯을 가지고 있고, 나아가 카드를 맞출 때 관객의 반응과 마술사의 직감을 활용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이쪽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스킴은 이에 대해서 상당히 미묘하면서도 오묘한 접근법으로 해결하고 있다.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마치 이게 당연하고 타당해보이는듯한 구조를 보이는 것이 재밌던 파트.
Step 9은 '아이디어 차용'에 관한 파트였다. 전반적인 마술의 형태가 갖춰진 후 우연히 민스킴이 접한 다른 연출의 특정 장면을 따와서 본인의 연출에 적용한 것에 대해서 논하는 파트. 다른 좋은 마술의 특정 모습에서 따오는 것이야 흔한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모습을 따와서 여기에 쓰는게 어울리지 않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연출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혹은 반복되는 과정 중 마지막 반전의 요소를 주기 위해서 가져온 점은 이해가 갔지만 마치 맛있는 설렁탕과 맛있는 황금올리브가 만나서 끔찍한 '황금올리브 설렁탕'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참고로 일전에 민스킴 마술사와 히든점스 모임에서 만나서 이야기해볼일이 있어 이 점에 대해서 논의한 적이 있는데, 나의 관점에는 일부 동의하면서도 바꾼 방식을 더 좋게 피드백한 경우가 많다고 하여 사람마다 중요시여기는 포인트가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기도 했다.
종합 및 총평
우선 상당히 여러가지 면에서 센세이션했다. 해법 유출을 막기 위해 연출 전과정을 공개하지 않는 렉처는 흔하지만, 아예 어떤 형태의 마술인지조차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논란이 있기 마련이다. 예전의 PH가 낸 '하울링(Howling)'도 그렇고, 민스킴이 냈던 '블랙 유니콘' 역시 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더더욱이나 렉처에서 단 한가지 연출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다면,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소비자들이 구매하길 바라는 것은 어쩌면 대단히 용감한 시도이다. 국내 마술계, 정확히는 어린 친구들의 마술계에서 렉쳐노트와 민스킴이 차지하는 위상이 없었다면 과연 팔리기나 했을까 싶을 정도(만약 이 렉처가 스타하트에서 나왔다고 생각해보면...)
또한 민스킴만이 보여주는, 어쩌면 고집스럽다고까지 할 수 있는 세세한 설명과 수많은 디테일들은 감탄이 나올 정도였지만, 그래서 결국 마지막 연출이 정말로 좋은 연출이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초기 원안에 비해서 비약적으로 발전된 연출임에는 동의하나, 개인적으로는 원안 자체가 그리 좋지 못한 마술이라 결과물도 결국 한계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민스킴 본인에 따르면 아마 자신의 카드마술 레퍼토리에서 본 연출이 빠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게 정말 그정도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 대단히 긴 호흡을 가졌고, 수많은 과정과 구조를 가진 연출인데 결말의 서스펜스가 너무나도 부족하다고 할까. 마치 수많은 터치가 들어간 정교한 음식이 미슐랭에서 나온다 한들, 결과적으로 '맛이 없으면' 그건 미식이 아니라 미적 허영이라고 생각하는데 본 연출 역시 일반 관객에게 크게 어필될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렉처 내에서도 연출을 처음부분이 아니라 맨 뒤에 배치한 이유가 수많은 디테일들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사실 충분히 좋은 연출이라면 미리 보고 해법과정을 하나하나 들어도 충분히 감탄이 나올 것이다. 그의 디테일에 대한 집착과 노력을 다른 보다 직관적이면서 쉬운 연출에 적용하여 바리에이션을 한 작품을 선보였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연출에서 건져갈 것은 대단히 많다. 자신이 생각하는 프레젠테이션을 구체화하는 방법, 공정성에 대한 부여, 명확한 지시와 예시를 보여주는 방법, 당위성을 부여하는 방법, 미스디렉션을 주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 기억에 남을 그림을 주는법까지 2시간의 렉처시간동안 대단히 많은 방법들을 알려준다. 비록 이들이 모여서 유기적으로 잘 작동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있지만, 각각이 상당히 완성도 높은 테크닉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요리 유튜브를 예시로 들겠다. 고든램지의 대표급 요리인 '통삽겹 요리'에는 정말 수많은 기법이 들어간다. 이 마지막 최종 결과물이 취향에 맞는지는 별개로 각 과정에서 등장하는 오븐 시 채수 넣는 높이, 고기를 넣는 방향, 칼질을 넣는 법, 채소 사용법 등의 각 조리법은 하나씩 떼와서 자신의 요리에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 본 연출 역시 렉처의 마지막 연출을 통째로 쓸 필요 없이, 본인이 마음에 드는 부분을 여럿 취사선택하여 적용할 수 있다는 것.
결국 종합하면 렉처 제목 그대로 '보고 좋은 점이 있다면 가져가기 위한 렉처'
여태까지 배운, 그리고 앞으로 배울 어떤 한 마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로 휴지통에 버리기보단 그 전에 좋은 마술로 리포밍하는 시도를 알려주는 렉처라 할 수 있다. 소위 마술을 '나만의 것'으로 바꾸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는 렉처. 완전히 새롭고 신박한 기술이나 완벽한 연출을 기대한 누군가에게는 돈낭비로, 기존의 마술을 돌아보고 내재화하길 원하는 누군가에게는 인생렉처로 남을 수 있는 렉처라 생각한다.
총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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