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권준혁 마술사의 국내 최초 공연 백색소음 리뷰이다.
권준혁 마술사는 권에드라는 예명으로 이전부터 마술인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던 마술사이다. 한국마술사 중에서는 흔치 않게 미국의 마술을 정통으로 배운 사람이기도 하고, 그 유명한 매직캐슬에서도 공연을 올리기도 한 말 그대로 이미 검증된 실력의 마술사이다.
그러나 국내의 일반 관객, 심지어 마술인들 중에서도 그의 마술을 실제로 본 사람은 손에 드물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통한 마술시연영상을 공유하지도 않을뿐더러 극히 제한된 자리에서만 자신의 마술을 공개해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가 이번 국내에서 클로즈업 공연을 한다는 것을 알고 공연을 보게 되었다.
오늘의 공연장소는, 이전 Ryo 마술사님의 공연이 진행되기도 하였던 'Before Sunset(비포선셋)'이었다.
은은한 조명, 고급스러워보이는 소품과 인테리어는 권준혁 마술사의 마술스타일, 나아가 그 자신의 스타일과도 잘 어울렸기에 적절한 공간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술공연
'마술을 왜 시작하였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금일 진행된 공연은 총 10명 정도의 관객이 참여한 소규모 클로즈업 공연이었다. 마술인 관객들이 많이 보러 오기로 유명한 그의 공연이었기에, 나는 의도적으로 마술인 관객들이 다 한번쯤은 보고 갔을 시즌 막바지쯤의 공연으로 신청하였고 금일 관객 중에서는 나 포함 마술인 3명만 관람하였다. 한가지 특이할 점으로는 방송촬영이 진행되었다는 점? 개인적으로는 방송가에 대한 대단한 불신과 반감이 있는데(당해본게 한두번이어야지..) 다행히도 본 공연의 관람에 있어서 크게 불편한 점 없이 감상을 할 수 있었다.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된 공연은 말 그대로 고전주의(Classic, 클래식)에 가까운 구성이었다.
컵앤볼, 코인 어크로스, 패들트릭, 카드마술, 북테스트, 에그백 등 다양한 연출을, 소위 맥스 말리니나 다이 버논의 서적에서 볼 수 있었던 고전적인 방식과 느낌으로 연출하였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고전적이라고 하여 낡고 오래된 것을 그대로 되풀이할뿐이라고 오판하지는 않길 바란다. 보다 트랜디해지고 가벼운 분위기로 연출하는 것이 일상화된 요즘의 마술계와 달리 그의 마술들은 완벽한 무게감의 분위기 속에서 아름답고 정교하게 이루어졌다. 완벽한 고전주의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던 공연.
내가 가장 인상깊게 본 것은 컵앤볼과 에그백.
컵앤볼은 클래식한 쓰리컵 루틴이었지만, 쓸데없는 기교 없이 깔끔한 기술과 미스디렉션으로 어디까지 퍼포밍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공연을 보기전부터 많은 이들이 '국내에서 에그백을 제일 잘한다'라고 하여 많은 기대를 가지고 본 에그백 루틴은 그 기대 이상의 엄청난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번외로 공연의 각 부 시작전 권준혁 마술사의 제자 마술사 한명과 레온마술사의 간단한 퍼포밍시간이 있었는데, 이것도 나름 인상적이었다. 마술 자체는 기초적이거나 쉬운편에 속하는 마술이었지만 이러한 마술사들, 특히 제자마술사분 같은 사람이 공연을 할 기회를 가지게 해줬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 연극이나 방송 등에서 신입들에게도 기회를 어떻게든 주려고 작게나마 코너속 엑스트라라도 시켜주려고 했던 희극인들의 모습도 겹쳐보이는 것 같아서 흐뭇하게 볼 수 있던 시간.
후기
정리하면, 고전주의가 왜 아직까지도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편하게 즐기기 좋은 공연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오히려 호불호가 강하게 갈릴 공연이라 확신할 수 있다.
비단 연출의 현상 뿐만 아니라 권준혁 마술사 본인은 물론 연출의 패터와 분위기, 마술사-관객 사이의 주도권 등 모든 것이 정말 미국 본토의 마술 스타일 그대로이기에, 편한 마음으로 즐기듯 보기보다는 예술독립 영화를 보는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마술의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와 예술적 요소의 비율로 치면 예술쪽으로 훨씬 치우친 느낌? 공연의 한 액트가 끝날 때마다 숨을 그제서야 몰아쉬게 되는 압박과 몰입감은 누군가에겐 불편하게 다가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의도적으로 이러한 긴장감을 풀어주는 것 같은 순간마저도 굉장히 미국식이었기에 그 정도가 충분치 않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나에게 이 공연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큰 주저 없이 바로 추천할 것이다.
국내에서 보기 힘든 스타일의 마술, 그것을 정통 마술계의 계보를 잇는 권준혁 마술사가 퍼포밍하는 것을 볼 기회가 앞으로 얼마나 있겠는가. 요즘 어딘가 부족함을 느끼지만 그것의 원인을 찾지 못했던 마술인들에게는 더더욱 추천한다. 전통과 기본에 충실한 마술이 어디까지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던 소중한 시간.
많은 기대를 하고 관람하였고, 관람 후 생각이 더더욱 많아진 시간.
내가 마술인으로서 걷던 길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 9월의 어느 토요일 시간.
'마술 > 마술오프라인 행사, 공연, 칼럼 등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1005 박민호의 '롤러코스터' (11) | 2024.10.09 |
---|---|
20240818 에릭 치엔(Eric Chien) 렉처쇼 / 워크샵 리뷰 (1) | 2024.08.22 |
20240803 비포선셋 - Ryo 마술사 '소소하다' (0) | 2024.08.04 |
20240726 문엔트리 - 루카스 마술사 'A Trip To The Moon' (0) | 2024.07.27 |
20240629 문엔트리 - 최신혁의 IMAGINE (0) | 2024.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