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멘탈리스트인 Ryo 마술사님의 공연 '소소하다' 후기이다.
Ryo 마술사님은 대한민국 클로즈업 마술 매직바 트릭의 마스터였으며, 멘탈리즘뿐만 아니라 클로즈업 마술의 대가로 정평나있다. 최근에는 클로즈업공연은 하지 않으며 주로 스테이지 멘탈리즘 퍼포밍을 위주로 공연을 하고 있는 Ryo 마술사님이었기에, 이번 약 8년만에 클로즈업 마술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지체없이 예약을 했다.
오늘의 공연 장소는 루카스 마술사의 2번째 브랜드인 'Before Sunset(비포선셋)'이었다.
첫번째 브랜드인 문엔트리가 공연과 컨설팅 집중이라면 이 비포선셋은 정말 낭만있는 유럽풍의 서재에서 진행되는 프라이빗 마술쇼들이 진행되는 공간으로, 평일에는 매일 다른 공연자들이 공연을 선보이고 주말에는 특별 공연이나 렉처가 진행되는 장소이다.
앞서 문엔트리가 국내 마술의 발전의 교육면에서 크게 기여를 했다면, 이 장소는 마술을 조금은 고급지면서도 대중적인 공간으로 다가가기 위한 의미있는 시도로 느껴졌다. 약간의 오바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기존에 사기꾼이나 광대의 이미지를 가지던 마술사의 모습을 로베르 우댕이 수트를 빼입은 상류층 신사모습처럼 탈바꿈한 것처럼, 본 시도 역시 훗날 한국에서의 마술 이미지를 바꾸는게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느껴지기에 나는 응원하고 있기도 하다.
마술공연
금일 진행된 공연은 총 6명의 관객이 참여하는, 굉장히 소규모의 클로즈업 공연이었다. 관객은 모두 남성관객이었으며, 친구분을 따라서 온 한분을 제외하면 모두 마술인 관객이었다. (이후에 스몰토크 시간에 들은 것이지만, 그날 관객이 어떤 종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진행되는 루틴이 조금씩 바뀌시는 것 같은데 '여성관객 없음 + 거의 다 마술인'이어서 마술들 전체가 조금 매니아틱하게 진행된 점은 아쉽던 점. 이건 근데 어쩔수 없지..)
말 그대로 같은 테이블에서 모든 관객과 Ryo 마술사님이 앉은 채로 진행되었고, 관객 한명 한명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면서 마술이 진행되어 마술을 관람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같이 참여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특히 소소하지만, 마술 시작전 관객의 이름 하나하나를 다 물어보신 후 기억하시고 공연 내내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시는 디테일('여기 계신 관객분'이란 단어 대신 '지훈씨가'라고 하시는 등)이 은근 크게 다가왔다.
멘탈마술이 일반 마술과 가지는 차이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시작한 본 공연의 구성은, 소위 멘탈리즘 이라고 하면 떠오를만한 연출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반 카드, ESP 카드, 북테스트, 쿠로스케, 빌렛 등 다양한 도구들이 활용되었으며, 료마술사님의 트레이드 'Yes or No' 루틴, 줄자 루틴, 반전이 있는 아칸 등 연출을 볼 수 있었다. 연출 자체가 매우 색다르거나 센세이셔널한 루틴이 있지는 않았지만, 료마술사님 특유의 캐릭터성과 연출의 느낌이 강하게 살아있어서 보는 내내 즐거웠다.
내가 가장 인상깊게 봤던 것은 북 테스트와 줄자 마술이었다.
북테스트 루틴은 마술 자체의 그림도 예뻤지만(일반적인 북테스트와 다르게 진행되기도 했고, 서틀티도 아주 설득력 있어서) 중간중간 긴장의 끈을 풀고 다같이 웃을 수 있는 포인트와 신비함을 느끼는 포인트의 명암 대비가 확실해서 역시 클라스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줄자 마술은 '근접학'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라는 컨셉이 상당히 재밌었다. 마주보고 선 두 관객이 본인들이 원하는 만큼 멀어졌는데 그 사이 거리가 예언되어 있는 루틴이었는데, 해법은 차치하고 그림 자체가 예뻐서 인상적이었다.
앵콜 포함 약 1시간 반의 공연이 끝난 후에는 료마술사님과의 자유로운 토크 시간이 있었다.
마술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야구나 스포츠, 취미와 직업적인 이야기 등 말 그대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스몰토크를 했는데, 공연 마술사로서의 모습이 아닌 인생의 선배로서의 료마술사님의 모습을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던 것 같아서 즐거웠다. 깨알같이 공연 내내 조용하시던 비마술인 관객분이 공연 끝나고 토크 시간에 야구 관련 이야기로 갑자기 확 돌변하시는 것을 보고 료마술사님 포함 전원이 어제 본 일중에 제일 놀라웠던 일이란 것에 공감한 것은 웃음포인트.
후기
정리하면 왜 그가 멘탈리스트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지를 이해할 수 있던 시간 이었다.
소위 데런브라운의 루틴처럼 기괴하거나 괴이한 느낌이 들거나, 피터 터너의 루틴들처럼 실시간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공연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멘탈리스트라면 응당 사람을 좋아하고 관찰해야한다' 라고 생각하는데 본 공연에서는 료마술사님의 이러한 장점이 극대화되어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단순 관객을 '내 위대한 능력을 목격할뿐인 목격자'나 '카드 뽑는 기계' 등으로 활용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마술에 참여시키며,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관객과 마술사의 교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은연중에 표현해주시는 것이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다. 모든 연출에서 마술사의 예언이 맞거나, 선택이 옳게 나타났을 때도 '흠, 당연히 그렇지'의 자세를 보여주신게 아니라 '정말로 맞춘것을 기뻐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도 인상적이던 포인트.
아무쪼록 참 만족스럽던 시간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마음이 참 편안하면서도 푹 쉰 것 같은 기분이 들던, 8월의 첫 토요일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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