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서론
대한민국의 언더그라운드 마술사이자 히든점스의 일원인 엄준혁 마술사의 신작, 'Coincidencia Total' 리뷰이다.
'Coincidencia Total'(코인시덴시아 토탈, 영어로는 Total coincidence)는 1979년 스페인의 마술사 루이스 가르시아에 의해 처음 연출의 골자가 짜여진 후, 또다른 스페인의 위대한 마술사 후안 타마리즈에 의해서 그만의 버전으로 바리에이션된 마술이다. 오랫동안 그의 카드마술 액트의 피날레를 장식하기도 한 이 마술은 그의 저서 소나타(Sonata)에서 해법이 공개된 이후 많은 바리에이션을 거쳐왔다. 두 덱을 사용하던 것이 한덱을 사용하는 것으로 바뀌기도 하고, 특정 스택을 활용하던 것을 무작위로 섞은 덱을 이용하기도 하며, 손가락 기술이 필요하던 것을 없애는 등 다양한 변천사를 거쳐왔지만, 그와중에도 불변으로 남아있던 것은 아래와 같이 멀티페이즈로 구성된 마술 현상 구조였다.
(이하 색상과 숫자가 같고 문양만 다른 카드를 트윈 카드라고 부르겠다. 예시) 3 하트 - 3 다이아몬드)
Phase 1 - 두 개의 패킷 중 하나에서 관객은 카드를 고른다. 같은 위치에 있는 반대 패킷의 카드는 트윈 카드이며, 나머지는 일치하지 않는다.
Phase 2 - 두 패킷을 섞는다. 관객은 카드 두장을 각각 한장씩 고른다. 이 두 카드는 트윈 카드이다.
Phase 3 - 합해진 패킷을 순서대로 분리한다. 분리된 패킷을 확인해보면, 나머지 카드들이 모두 트윈카드로 일치한다.
(Phase 4 - 2덱을 사용한 버전이라면 나머지 사용되지 않은 카드들마저도 같은 위치에 트윈카드가 존재한다)
위와 같이 멀티페이즈의 점진적 증가하는 신비함을 보여주는 루틴이었기에 이 루틴은 위대한 루틴 중 하나로 칭송받아왔으며, 후안 타마리즈 본인의 명성을 올리는데에도 크게 기여한 루틴이었다.
본 렉처는, 엄준혁 마술사가 위의 후안 타마리즈의 원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낸 그만의 '토탈 코인시던스' 루틴이다. 5만원이라는, 단순 루틴 하나치고는 비싸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가격에 발매한 이 렉처에서 그는 약 1시간 50분의 시간동안 이 마술을 위한 모든 과정과 서틀티, 기술을 알려주고 있다.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매번 리뷰글마다 적는 내용이지만) 이번 글의 경우에는 한가지를 명확히 밝히고자 한다.
많은 마술들에서 연출의 자세한 단계별 설명은 해법 공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에 언제나 연출은 필자가 생각하기에 '관객이 느끼는 연출 현상'을 위주로 설명할 것이다. 나아가 본 렉처를 리뷰함에 있어서 기존 렉처 리뷰들과는 조금 다르게 원안처럼 연출 각 단계에 대해서 나눠서 설명하고자 한다. 무슨 말이냐고? 자세한 내용은 차차 아래에서 밝히겠다.
1. 연출 현상
Phase 0 - 관객은 덱을 자유롭게 섞는다. 덱을 마술사와 관객이 절반씩 나눠가진다. 마술사는 관객에게 마술사가 하는 행동을 따라할 것을 요청한다.
Phase 1 - 마술사는 자신의 패킷을 한번 컷하고, 관객도 자신의 패킷을 한번 컷한다. 두 사람이 컷한 위치의 카드는 트윈 카드이다.
Phase 2 - 마술사와 관객은 카드를 한장씩 내려놓다가 멈춘다. 멈춘 위치에서의 두 카드는 트윈 카드이다.
Phase 3 - 마술사와 관객은 패킷을 다시 여러 패킷으로 나눈 후 합치면서 섞는다. 패킷을 뒤집어보면, 마술사와 관객의 모든 카드들이 트윈카드로 일치한다.
2. Setup & 페이즈 0
원안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아마 어느정도 카드마술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루틴의 원안은 풀덱 세팅이 필요한 마술이다. 물론 '래터 프롬 후안' 등에서는 완전히 섞은 덱 상태에서 자신이 원하는 세팅을 만들어내는 바리에이션 연출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그렇게까지 자연스러운 연출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아마 내가 타마리즈와 같은 역량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인 것이 큰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밝히겠다. 본 렉처의 연출 역시 셋업이 들어간다. 단! 이 셋업이 들어가는 순간에 대해서 눈치채는 관객(비마술인 관객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마술인 관객도)은 굉장히 드물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더욱 놀라온 것은, 완전히 섞인 덱에서 시작하여 셋업을 만듬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이 매우매우 쉽다는 것이다. (엄청나게 대단한 솜씨의 반덱 컬 등과 같은 무지막지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이 부분에서 사용된 원리는(정확히 똑같은 방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원리 자체는) 비단 이 연출에 국한되지 않으며, 모든 카드마술들에서 확장되어 사용될 수 있는 방식이란 것이 아주 매력적이다. 누군가는 이 극찬에 대해서 '너무 오바한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조금 오만한 말이지만(그리고 내가 이런말을 하는 것은 극히 드물지만)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틀렸다.
셋업이 들어갔다는 말을 보면 자연스레 가지는 의문이 페이즈 0에 관한 내용일 것이다. 셋업이 들어갔는데 어떻게 관객이 자유롭게 섞는단 말인가? 소위 컷만 몇번 하고 만 것을 자유롭게 섞었다고 표현한건가? 아니다. 관객은 정말 자유롭게 섞으며, 심지어 리플셔플(인터라킹 체인등이 활용가능한)이 아닌 카지노 워시 셔플을 사용하여 자유롭게 섞게 된다. 자신이 원할때까지. 그런데도 셋업이 활용된다고? 놀랍게도 그렇다는게 포인트. 아마 마술인들도 이 파트에서 놀라는 사람이 가장 많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들 놓치기 쉽지만, 페이즈 0의 마지막 핵심 포인트는 '마술사가 한 행동을 관객이 따라한다'는 것이다. 소위 'Do as I do'라고 표현되는 연출 형태에 포함되는 이 파트는, 원안과의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원안의 표현 방식이 '나도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연에 의해서 이렇게 되었네?'라는 쪽에 가깝다면 본 연출은 '내가 한 것을 당신이 잘 따라서 도와줬기에 가능한 일이다'라는 표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어느쪽이 더 좋고 나쁘다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나는 '관객이 있었기에 마술이 성립했다'라는 방식인 본 연출의 표현 방식을 더 선호한다.
3. Phase 1
카드를 컷한 위치의 두 카드가 일치한다는 표현만 보고 해법을 알아챈 사람도 있을수도 있겠다. 해법 자체는 상당히 간단한 파트가 맞다. 다만 오히려 그렇기에, phase 1의 해법적인 요소보다 그 외의 요소들의 디테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약간의 손기술(?이라고 하기도 어려운)과 서틀티가 필요한 파트인데, 이것이 깔끔하게 행해지지 않는다면 이후의 페이즈 전체가 무너질 수 있기에 간단하지만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페이즈라고 할 수 있는 파트.
논외로 엄준혁 마술사가 설명해주는 긴장과 이완에 대해서 결코 쉽게 넘기지 말길 바란다. 소위 극적 연출 효과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는 이 긴장과 이완은 당신의 마술의 맛을 한층 더 깊게 우려내는 좋은 조미료가 될 것이기에.
4. Phase 2
카드를 내려놓다가 멈춘 위치가 같은 카드라는 점만 보면 당최 이게 가능한 일인가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다. 고의로 애매모호하게 서술한 파트이다. 개인적으로 이 파트는 향후 phase 3로 넘어가기 위한 징검다리 효과인 파트일뿐이라고 생각하며, 현상 자체도 phase 1보다 더 발전한 파트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원안에서는 착실하게 그 단계가 올라갈수록 효과가 확실히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것에 비해서 확실히 매력이 떨어지는 단점인 파트라고 생각된다.
5. Phase 3
이 마술의 피날레이다. 카드를 다시 한 번 섞었음에도, 모든 카드가 정렬되어 일치하는 현상.
이 렉처를 수강한 사람들이 가장 의문을 가질법한 파트이기도 하다. '아니, 이게 관객에게 통한다고?' 라고 생각할 부분이 최소 2번은 있는 파트이기에. 엄준혁 마술사도 그것을 미리 잘 감지하고 있었는지, 그의 1000번이 넘는 공연 경험 일화를 바탕으로 하여 이 파트의 의심을 잠재우려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이에 대해서는 엄준혁 마술사의 생각이 백번 옳다고 생각한다. 이 파트의 특정 부분에 대해서 의심하거나 믿지 않는 사람은 오직 두 부류일뿐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루틴을 퍼포밍한적이 없거나, 이 루틴을 충분히 연습하지 않은 채 무리해서 시연하다 망친 사람들뿐이라고. 그저 믿고 따라해보라는 말, 그저 그것뿐이다.
6. 종합 및 총평
종합하면 '현재까지 내가 본 카드마술의 피날레 중 가장 내 취향에 맞는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특수 카드를 활용하면, 이 루틴보다 더 쉽거나 더 말도 안되는 놀라운 현상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매번 그러한 특수 기믹 카드들이나 기믹 덱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기에, 평소 일반 노말덱 하나를 들고다니다가 상황에 맞춰 3 - 4개의 루틴을 연속으로 보여주곤 했다.이때 소위 피날레, 즉 마지막 연출로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항상 있었다.
내가 가장 자주하던 종류의 방식은 마술사의 능력에 대한 설명(엠비셔스라던가 비지터 등 간단한 것들)부터 시작해서 마인드 리딩에 대한 접근과 설명(Think of a card), 그리고 이를 배운 관객도 할수 있다는 것의 증명(Beautiful mind나 OOTW)을 거쳐 피날레로 풀덱이 정리되는 마술(오일앤 워터 중 풀덱 정렬 루틴) 등으로 이어지곤 했는데, 항상 마무리가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논외지만, 관객이 여러명이라면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신들이 내가 본 관객들 중 최고인 에이스들이었다는 패터와 함께 C3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 렉처를 보기전에도 나는 소나타, 매직프롬 마이하트, 래터 프롬 후안 시리즈 등을 통해서(그렇다, 난 이 시리즈를 다 산 호구다) '코인시덴시아 토탈'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핸들링적 요소로 요소나 세팅의 타이밍/방법 때문에 난 그다지 선호하지 않아서 거의 머리 속에서 지우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접한 이 루틴은, 내겐 굉장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연출 자체의 훌륭함을 떠나서 내가 이전에 고민하던 요소들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가 너무 확실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전 엄준혁 마술사의 'New door seminar'때도 받았던 '쾅!' 느낌을 다시 받았다고 해야하나... (물론 내가 쓸수 있는 좋은 피날레 마무리 연출을 얻어서 기뻤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물론 이 연출이 원안을 업그레이드 시킨 연출이라거나, 비슷한 현상을 보여주는 루틴 중 최고의 연출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연출 자체의 효과가 일부 떨어지는 파트도 분명히 있고 원안에서는 관객들이 으레 해봄직한 행동이 대해서 굉장히 오픈되어 있는 반면, 본 연출에서는 해당 부분에 대한 커버가 들어가야만 하는 파트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Phase 0의 설명때도 말했듯, 기존의 연출구조와 다르게 'Do as I do'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은 내게 있어 확실히 더 매력적이라고 다가왔다. '이 세상에 어떤 마술이 관객 없이 성립될 수 있겠는가. 오늘 내가 보여준 이 기적과도 같은 우연은 사실 당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며, 오늘 마술은 내가 당신에게 보여준 것이기도 하지만 당신이 내게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는 메세지는 마술사라면 한번쯤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총점 - ★★★★★
p.s. 가격적인 면에 대해서 지적하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른 리뷰들, 그리고 나의 이전 게시글들에서도 충분히 밝혔기에 더 이상의 의견 피력은 불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p.s.2 이 연출을 잘 본다면, 반드시 떠오를 만한 무언가가 있다. 본 렉처에서도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가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렉처를 본 후 기존 그 대상에 대해 가지던 확신이 보다 더 굳건해졌다. 역시 마술은 머리와 상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퍼포밍을 해야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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