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0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서도호 전시회 후기

2026. 11. 4. 01:30·기타/공연,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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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2026년 11월 03일 관람한 서도호 전시회 관람 후기이다.

 

서도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설치미술가 중 한 명이다. 개인과 공동체, 집과 이동, 기억과 관계 등 보편적이면서도 근원적인 주제들을 조형적으로 풀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며, 특히 천과 실을 이용해 건축적 공간을 재현한 작품들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보다는 해외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작가로,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하면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를 둘러싼 평가가 모두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시대적 흐름을 잘 타고났다는 평가부터, 동양화의 거목이자 한국 미술계의 중추적인 인물이었던 아버지 서세옥의 영향과 지원이 그의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는 시각까지 존재한다. 소위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부잣집 도련님의 작품들'이라는 다소 냉소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는 작가. 그러나 그의 성장 배경이나 성공 과정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작품 자체만 놓고 본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중 한 명이라는 사실에는 큰 이견이 없을 듯하다.

 

주로 해외에서 활동해 온 작가인 만큼, 나 역시 그의 이름과 대표작 정도만 알고 있을 뿐 막연히 '유명한 동시대 미술가'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국내에서 대규모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고, 흔치 않은 기회라는 생각에 전시 관람을 하게 되었다.

 

 

국현미 주변 미슐랭 국밥으로 유명한 '안암'. 국밥 자체는 그냥 맛있다 정도였는데, 바위 튀김(돈까스)는 아주 예술이었다.

 

이번 서도호 전시회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고, 경복궁과 광화문, 북촌 한옥마을 등이 인접해 있어 전시 관람 전후로 함께 둘러볼 만한 장소나 맛집들이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전시 기간은 2026년 8월 27일부터 2027년 2월 9일까지로, 국립현대미술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예매와 당일 현장 발권 모두 가능하다. 온라인 예매는 매주 월요일 오후 6시에 다음 주 관람분이 열리는 방식인데, 워낙 인기가 많은 전시인지라 예매 경쟁도 상당히 치열한 편이다. 네이비즘과 같은 서버 시간 확인 사이트까지 이용해 수강신청하듯 예매에 도전해도 대기 인원이 수백 명을 훌쩍 넘어갈 정도. 다만 전시 기간이 아직 넉넉하게 남아 있는 만큼, 전시가 끝나갈 무렵에는 지금보다 예매 경쟁이 다소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다. 입장료는 8,000원으로 전시 규모와 인지도를 고려하면 비교적 저렴한 편이며, 도슨트 해설은 매일 12시, 14시, 16시로 하루 세 차례, 별도의 사전 예약 없이 현장에서 회차별 선착순 접수로 진행된다.

 

 

관람 후기

 

이번 전시는 상당히 큰 규모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3, 4, 5전시실을 모두 사용하는 것은 물론, 전시실 밖의 공간과 2층 MMCA 스튜디오까지 폭넓게 활용하고 있었다. 전시에서는 작가의 초기 작업과 아카이브 자료부터 2026년의 최신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작품들은 단순히 연대순이나 특정 주제별로 구분되어 있기보다는 각각의 공간과 작품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하나의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내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시실 밖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공간은 '시드 뱅크(Seed Bank)'로, 서도호 작가의 유년기 드로잉과 학창 시절의 작업 등,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하기 이전의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들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이후 전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여러 작품의 초기 아이디어와 모티브를 엿볼 수 있는 작업들도 있었고, 지금의 서도호를 대표하는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다양한 시도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3 전시실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문(가운데)와 그의 드로잉들(좌, 우)

 

 

 

그가 유년기에 살았던 성북동 한옥의 대문을 1:1 크기로 재현한 '작은 문'(결코 작지 않았다. 그 옛날의 재력을 엿볼 수 있던 작품)을 시작으로, 3전시실에서는 200점이 넘는 그의 드로잉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작품마다 명확한 해석이나 상세한 설명이 붙어 있지는 않았지만, 기억과 관계 / 개인과 공동체 / 집과 공간 등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요 주제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혹자가 말하듯 전반적으로 유사한 이미지와 주제가 반복되기에, 어느 시점부터는 다소 지루하거나 식상하게 느껴질 법도 했다. 그러나 거의 동일한 이미지를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초기의 아이디어를 확장하고 발전시켜 새로운 형태로 풀어낸 작품들도 있었다. 이처럼 하나의 주제를 여러 방식으로 변주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엿보는 재미가 있어, 예상과 달리 끝까지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실과 젤라틴 티슈, 수제 종이 등을 활용한 작품들이었다. 평면 위에 입체적인 구조와 질감을 구현한 모습이 마치 2D에서 3D로 넘어가기 직전의, 소위 2.5D를 보는 듯한 느낌이 인상적이던 공간.

 

 

이어지는 4전시실에서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러빙/러빙(Rubbing/Loving)'을 만나볼 수 있었다.

 

보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압도적인 이 작품은 서도호 작가가 살던 집의 벽과 바닥, 문틀과 창문 등에 닥종이를 대고 흑연과 색연필로 일일이 문질러 공간의 형상을 그대로 떠낸 작품으로, 완성하는데에만 10년 가까이 걸린 작품이다. 재현해 낸 디테일과 완성도 자체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도 이러한 발상을 해냈다는 사실 자체에 감탄이 나오던 작품이었다.사라져 가는 공간을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한 작업이었다는 그의 설명, 그리고 '문지른다(Rubbing)'는 행위가 곧 '사랑한다(Loving)'는 행위와 맞닿아 있다는 작가의 생각과 더불어 여기에 실제 제작 과정이 담긴 영상까지 보고 나니, 작품을 향한 감탄과 더불어 '대체 그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였을까?'라는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나도 이런 비싼 집 살면 그런 애정이 생겼으려나?)

 

 

 

5전시실에서는 그가 오랜 시간 탐구해 온 집과 공동체에 관한 사유를 엿볼 수 있었다.

 

그가 살아온 여러 집의 구조와 공간을 천으로 정교하게 재현한 '완벽한 집: 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은 하나의 공간 안에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가 교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한자리에 머문 채 시간과 공간이 빠르게 바뀌는 장면을 보는 듯한 작품으로, 집 안의 구조물과 소품 하나하나를 천으로 재현해 낸 디테일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도 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했던 여러 집을 한자리에 겹쳐 놓겠다는 발상 자체가 감탄스러웠다. 처음에는 그저 투명한 유리 바닥인 줄 알았지만 '바닥' 역시 인상적이었다. 수많은 작은 인물들이 바닥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수많은 개인의 노력과 헌신이 모여 현대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일종의 인류 예찬과 동시에 나 역시 이 거대한 사회를 떠받치는 수많은 기둥이자 톱니바퀴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씁쓸함도 밀려왔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인 2층 MMCA 스튜디오에서는 그의 가족과 그 안에 쌓인 시간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었다.

 

두 딸과 함께 제작한 작품인 '타임 포켓'을 비롯하여, 가족들의 옷에서 떼어낸 주머니들을 한데 모은 '사랑의 기억', 자녀들이 어린 시절부터 입어온 옷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열한 '부성' 시리즈 등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앞선 전시실에서 집과 공간, 개인과 공동체라는 비교적 거시적인 주제들을 다뤘다면, 이곳에서는 그 시선이 가족이라는 가장 사적이고 친밀한 영역으로 향하는 듯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중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근원적인 공간인 가족, 그 안에서 함께 보낸 시간과 쌓여온 기억들을 작품으로 남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전시 전체를 관통하던 주제들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모이는 느낌이기도 하고, 따뜻한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전시 관람을 마무리하기에 더없이 적절한 공간이었다.

 

 

마지막 반전?! 사실 이번이 2회차 관람이다.

 

전반적으로 대단히 만족스러운 전시였다.

 

이제 와서 밝히지만, 사실 이번이 두 번째 관람이었다. 첫 관람에서 워낙 만족스러운 경험을 했던 터라,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전시장을 찾게 된 것. 최근 관람했던 앤디 워홀, 뱅크시, 데미안 허스트 등의 전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인지도나 이름값은 덜할지 모르지만(애초에 비교 대상들이 워낙 거물들이니 어쩔 수 없지만), 개인적인 만족도와 감동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는 전시였다.

 

우선 작품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아 그야말로 원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2D의 평면적인 드로잉에서 시작해 실과 젤라틴 등을 활용한 2.5D 느낌의 작품들, 나아가 압도적인 규모의 3D 설치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전시가 진행될수록 점차 시야와 공간이 확장되어 가는 듯한 구성도 대단히 마음에 들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작가의 초기 아이디어와 스케치들이 전시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발전하고 구체화되는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발상이 어떻게 발전하여 지금의 형태에 이르렀는지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전시 초반에 스케치로 접했던 작품을 후반부에서 거대한 3D 설치 작품으로 다시 마주하는 순간의 짜릿함은, 다회차 관람을 해본 사람이라면 깊이 공감할 수 있을 듯하다.

 

비유하자면 훌륭한 하이엔드 스시 오마카세에 방문한 것과 같은 경험이었다. 하나하나의 음식이 모두 맛있고 완성도도 높은데, 양까지 푸짐해 충분히 배부르게 즐길 수 있었고, 마지막 앙코르 스시와 디저트까지 완벽하게 마무리된 느낌이랄까. 작품 개개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전시의 규모와 구성, 전체적인 감상 경험까지 모두 만족스러웠던 시간이었다. 오는 12월 중순 이후로는 일부 작품이 교체되거나 새롭게 추가될 예정이라고 하니, 전시가 끝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3회차 관람을 꼭 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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