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2 비포선셋 - 고동재 마술사 '디어 유진'

2026. 1. 3. 20:34·마술/마술공연 및 오프라인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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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2026년 01월 02일 비포선셋에서 관람한 고동재 마술사의 <디어 유진(Dear Eugene)> 공연 관람 후기이다.
 
이전에도 여러번 소개한 적 있듯 비포선셋은 마술공연 및 교육관련 회사인 '문엔트리'에서 만든 공연시설로, 프랑스 살롱 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주중에는 매일 다른 마술사들이 정기공연을 보여주는 '미드나잇 인 파리스' 시스템을 메인으로 운영중이며 주말에는 특별공연이나 렉처쇼를 진행하고 있는 공간이다. 그동안 이 공간에서 공연을 10회 이상 봐온 나지만 주중에는 직장 업무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미드 나잇 인 파리스' 공연은 단 한번도 관람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연휴를 끼고 휴가를 내 처음으로 '미드나잇인 파리스'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선택한 공연은 고동재 마술사의 디어 유진. 고동재 마술사의 본업은 디자이너로, 근래의 마술계에서는 루카스 퍼블리케이션의 서적 표지 및 마술 크리에이터 PH의 제품들 디자인을 담당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비포선셋의 주중공연자 및 다른 스페셜 공연자들과는 다르게 마술을 전문적으로 트레이닝받거나 퍼포밍해오지는 않았던 그지만, 지난 1년간 고동재 마술사가 진행한 '포인트 오브 뷰', '만국박람회' 등 공연들의 평이 굉장히 좋았어서 큰 궁금증과 기대감을 가지며 공연을 예약했다.
 

 
 

공연 장소는 이수역에 위치한 비포선셋 공연장. 분명 익숙한 장소이지만 이번엔 입장할때부터 평소와 다른 점 두 가지가 느껴졌다.
 
우선 공연장의 소품들이 대다수 바뀌었다. 다른 마술사분들도 기본 배치되어 있는 소품들을 마술에 사용할 물건들로 바꿔서 배치하시긴 하지만 이번 공연처럼 대다수 물건들이 바뀐 경우는 처음 보았다. 바뀐 소품들도 마술도구라기보단 일반적인 인테리어 소품들처럼 하나하나 예쁘고 아기자기해서 마음에 들었다. 디자이너 출신인 고동재 마술사의 센스가 엿보이는 파트. 두 번째 차이점은  바로 좌석의 배치. 일반적으로 클로즈업 공연은 마술사 앞에 테이블이 있고 관객들은 그 건너편에 일렬로 앉아서 공연을 관람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공연은 모두가 다 원을 그리며 빙 둘러 앉아서 공연을 관람하는 방식이었다. 
 
평소보다 큰 기대를 품고 공연을 보러 온 나였고, 앞서 언급한 요소들은 모두 장점으로 작용해 그 기대를 더욱 키웠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에 대한 우려를 안고 관람을 시작했다.
 

<디어 유진(Dear Eugene)> 

 

 
 

오늘 관람한 <디어 유진(Dear Eugene)> 공연은 6명의 관객이 참여하는 소규모 클로즈업 공연으로, 위대한 마술사이자 마술 멘토인 유진 버거(Eugene Burger) 마술사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집시 쓰레드를 포함하여 카드, 볼을 포함한 클로즈업 매지션으로도 유명하지만, 비자르 매직(Bizarre Magic)이라하는 기이한 마술들의 대가인 유진 버거의 작품들을 고동재 마술사 본인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는지를 볼 수 있는 공연이라 할 수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공연은 약 1시간 10분 정도 진행되었다.
 
1부에서는 관객 소통이 주가 되는 클로즈업 마술이 주를 이루었다. 스펀지볼, 카드, 지폐 마술 등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는 소품들을 이용한 마술들이었지만, 마술을 풀어가는 진행이나 뉘양스가 좋아서 묘한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베스트는 스펀지볼이었는데, 책으로 볼때는 '이게 이렇게 한다고 느낌이 그렇게까지 다른가? 테이블 없이 이것을 할수 있나?'라고 생각한 파트를 실제로 눈앞에서 보니 그 강렬한 임팩트가 아주 매력적이었다.
 
2부는 유진 버거의 비자르 매직(Bizarre Magic)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비자르 매직은 부두술, 꿈, 미신, 유령 등 신비함과 기이함 사이 어딘가의 것들을 보여주는 마술들이다. 마술의 근원을 생각해보면 초창기의 마술들은 분명 이러한 비자르 매직들이 주를 이루었겠지만, 20세기 이후 고도로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며 미지와 신비는 그 설곳을 잃어 현재의 마술사들은 거의 퍼포밍하지 않는 분야가 이 비자르 매직이기도 하다. 관객은 물론이고 퍼포밍하는 마술사조차도 스스로 믿지 않는 것을 연출하는 것의 진정성과 전달력이 높을 수가 없기 때문. 그러나 고동재 마술사가 보여준 마술들은 분명 달랐다. 기이하고 으스스한 정서를 품은 연출을 퀄리티 있게 보여줌과 동시에, 그 마술의 근간에 깔린 신비를 관객에게 주입하지 않고 각자의 상상 속에서 저마다의 해석으로 완성되게 하였다. 더불어 각각의 마술 이야기 속 상징들을 통해 철학적이면서도 감정적인 메세지들을  전달해주었다. 그래서일까. 2부의 순서가 끝난 후에는 신비한 마술들을 봤다는 느낌이 아니라 19세기 말 미국 뒷골목 어느 점술집에서 상담을 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어떤 마술 공연에서도 이러한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기에 굉장히 묘한 뒷 여운이 남던 2부. 
 
마지막 3부에서는 2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고동재 마술사가 그 어디서도 하지 않은 이야기 하나, 그리고 유진 버거 마술사에게 전해야 하는 이야기 하나. 고동재 마술사의 인간적인 면모, 그리고 이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게 된 계기와 과정을 엿볼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던 파트였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다같이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고동재 마술사님 및 다른 관객분들(전부 다 마술사!)과 오늘 본 공연에 대해 좋았던 점들, 21세기 비자르 매직이 지향해야할 길, 현재 국내 마술 동향 등 다양한 대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시간만 된다면 정말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싶은 시간이었는데, 아쉽게도 막차 사정으로 1시간 컷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후기

 

 

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공연

 

 
단언컨대 지난 1년간 내가 본 공연 국내 마술공연 중 최고였다. 
 
본 공연의 마술들이 엄청난 해법이나 비밀을 가지고 있거나 화려한 기술과 연출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동재 마술사의 말처럼 '기술이 거의 필요하지 않은' 마술들고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본 공연은 마술이 단순 해법과 기술로 구성된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이라는 것을 매우 훌륭하게 증명해낸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유진 버거의 원본 마술들 하나하나도 다 훌륭했고, 원작들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본인의 상황에 맞게 바꾼 포인트들이 인상적이었다. 시기 적절하게 진행되던 조명과 음향 역시 훌륭했는데, 어시스트 없이 공연자가 직접 조절함에도 공연 이입을 방해하지 않아 좋았던 것은 덤.
 
무엇보다도 오늘의 베스트는 고동재 마술사 바로 본인이다. 같은 내용의 공연을 반복하여 퍼포밍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데, 오늘 공연에서 그는 온전하게 자신의 마술들에 집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느껴졌고, 그 어느 관객보다도 마술사 본인이 자신의 마술에 기뻐하였기에 관객들도 그의 마술에 더 빠질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관객을 잊지 않았다. 단순히 클로즈업 마술 시 관객과의 소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술을 하다보면 어느순간 '나의 마술실력을 관객에게 자랑한다'로 빠지기 쉽고, 특히 비자르 매직의 경우 '나의 이야기와 생각을 전해 관객에게 동의를 구한다'의 형태로 변모하기 쉬운데, 고동재 마술사는 이러한 함정들을 보란듯이 건너 뛰어 극복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술에 대한 사랑을 넘어 인간(人間)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누구든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026년 새해의 첫 문을 가슴 울리는 공연과 함께 열 수 있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기쁜 시간이었다. 곧 디어 유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공연을 올린다고 하던데, 고동재 마술사의 향후 발자취가 기대가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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