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2025년 11월 29일 관람한 비포선셋의 마술공연 <무한 마술 지옥> 리뷰이다.
이전에도 여러번 소개한 적 있듯 비포선셋은 마술공연 및 교육관련 회사인 '문엔트리'에서 만든 공연시설로, 주중에는 매일 다른 마술사들이 정기공연을 보여주는 '미드 나잇 인 파리스' 시스템을 운영중이며 주말에는 특별공연이나 렉처쇼를 진행하고 있는 공간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국내의 매직바(Deck 52가 부활하긴 했지만) 느낌 + 마술 매니아들의 성지 같은 곳이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이 곳에서 진행된 여러 공연을 관람하여 후기를 남긴 적도 있다.
이 비포선셋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행사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이번에 관람한 '무한 마술 지옥'이다. 일반적인 마술 공연에서는 한명의 마술사가 나와 1시간 정도 진행하는 방식이라면, 이 공연에서는 여러 마술사가 번갈아서 나와 3시간 이상의 공연을 보여주는, 말 그대로 무한한 마술 지옥을 보여주는 공연이다.
개요만 봐도 알겠지만 비마술인 관객보다는 마술 매니아를 타겟하여 진행하는 공연이며, 그만큼 인기가 많아서 자리가 열리면 거의 바로 매진되어버리는 행사이기도 하다. 올해엔 총 4번의 공연이 있었는데, 매번 티켓팅이 늦어서 참여를 못하다가 이번에는 간신히 성공하여 관람을 진행했다.


<무한 마술 지옥> 후기
이번 '무한 마술 지옥'은 총 7분의 마술사들이 각자 20-30분 정도의 시간동안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한 마술 공연을 보여주었다. 총 3부로 구성되었고 1부에는 3분, 2부와 3부에서는 2분의 마술사가 등장하여 공연을 진행했으며 각 부가 끝나면 10분간의 인터미션이 있었다(진짜 무한으로 논스탑 달리지 않아서 아쉽...)
오늘 공연에는 총 10명의 관객이 참여하였고, 무대 사이즈와 관객수에 맞춰 대부분의 공연 액트는 클로즈업-팔러 사이즈로 진행되었다. 한가지 재밌는 점은 관객 중 1분을 제외하면 마술인이었다는 것?(사실 비마술인이 무한 마술 지옥이란 공연을 신청하는 것이 더 신기한거 같기도 하고) 대부분 어디선가 뵌적 있던 분들이라는게 인상적이던 포인트.
+)워낙 많은 마술사분들이 등장했다보니 평소 리뷰글처럼 상세하게 적기는 조금 애매해서 간략하게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느낌 위주로 남겨보려고 한다. 언제나처럼 지극히 아마추어 관점에서 바라본 평이기에 나와 생각이 다르다면 읽으시는 분 생각이 옳습니다.
1부 - 성진우 마술사 / 전양호 마술사 / 김성율 마술사

1부의 스타트를 끊은 것은 성진우 마술사.
동전 마술과 낱말 카드를 이용한 멘탈 마술을 보여주었는데, 제스처와 자세에서 '프로스러움'을 보여주려하시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소품 활용도 좋았고, 깨알같은 개그도 내 취향이라서 만족. 다만 패터들이 조금만 더 정제되어 있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살짝 남는데, 이는 충분히 경험이 쌓이면 해결가능한 영역이기에 큰 문제는 아닌듯. 내년 '미드 나잇 인 파리스' 정기공연자로 활동 예정이시라고 하던데 인기 많으실것 같네.

그 뒤를 이어서 진행한 것은 전양호 마술사.
클래식하면서도 훌륭한 동전 마술플롯인 마이저스 드림 연출을 보여주었다. 공연 자체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공연 내내 아주 활짝 웃으시면서 연출하시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마술사가 마술을 성공하고 진정으로 기뻐하는 모습 + 조금의 실수가 있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능청스럽게 넘기는 모습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요소를 이미 갖추신 것을 보니 향후 모습이 기대가 된다.
+) 스마트폰을 활용한 동전 프로덕션 방식은 클래식하지만 여전히 비쥬얼하고 효과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너무 여러 번 비슷한 트릭을 사용하신 것은 아쉽네...

그 다음 타자는 김성율 마술사.
실크 투 케인과 실크 마술로 임팩트 있는 스타트를 보여준 후 에그백 루틴과 스펀지볼 루틴을 퍼포밍하였다. 인상적인 오프닝 / 에그백 루틴을 시작하기 위해 관객을 유도하는 패터 / 스펀지볼 루틴까지 전체적인 짜임새도 좋았고, 핸들링도 크게 실수하는 것 없이 잘 보여주었다. 내 기준 1부의 최고 마술사. 일부 능청스러움이나 연기가 살짝 아쉽긴 했지만, 이건 경험으로 충분히 해결될 영역이라 생각한다. 위의 성진우마술사처럼 내년 '미드 나잇 인 파리스' 정기공연도 진행한다고 하시던데 꼭 다시 와서 발전된 모습을 보고 싶단 생각이 드네.
2부 - 최원준 마술사 / 한지우 마술사

2부의 첫번째 순서는 최원준 마술사가 진행하였다.
예전에 여러 마술모임이나 세미나에서 뵌적도 있고, 이분이 번역자막을 달아주신 마술 영상작업들도 본적 있어 나름? 친분이 있는 마술사이다. '꿈'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로프 마술과 ESP(는 아니지만) 매칭 효과, 그리고 마인드 리딩 연출을 보여주었다.일단 가장 마음에 들던 건 바로 연출들의 연속성. 아무래도 한 마술사당 20-30분씩의 시간만 할당되다보니 다른 마술사들이 서로 다른 액트의 나열 식으로 준비한 것에 반해, 하나의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자전적인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중간중간 마술의 결과를 관객에게 선물해줌으로서 마술의 기억이 휘발되지 않고 물리적으로 남을 수 있게 해준 것도 내 취향이었다. 여러모로 오늘 공연을 위해서 많은 것을 준비한 것이 느껴지던 마술사였다.
다만 세부적인 디테일면에서는 제일 아쉬움이 많이 남던 마술사이기도 하다. 전체적인 그림은 분명 예쁜데, 그 그림을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를 찬찬히 보면 완성도가 부족하다고 해야할까나... 특히 마인드 리딩 연출은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하면 안되는 방식'으로 마술이 진행된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오늘 공연자분들 중 본업이 마술사가 아닌, 어쩌면 나와 가장 비슷한 느낌의 연출자시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아쉬웠던 것 같네.

2부의 두번째 마술사는 바로 한지우 마술사.
국내에서 카디스트리의 대가로 정평나있고, 1회 돈블링크 우승 / 생활의 달인 카드마술 달인 출현 등 요즘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마술사기도 하다. 사실 이전에 한지우 마술사님의 공연을 여러번 보고 그리 좋지 않은 후기를 남긴적이 있어서 조금 불편하시진 않을까 했는데, 굉장히 반갑게 맞아주셔서 약간 멋쩍은 느낌과 더불어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공연을 관람하였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된 후, 그 걱정은 모두 사라지고 모두 즐거움과 기쁨만이 남았다. 우선 본인의 장기를 살려 '카디스트리'와 결합한 카드마술들을 선보여주었는데, '비쥬얼한 마술'을 추구한다는 한지우 마술사의 마술철학과 잘 맞아 보는 내내 눈호강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 관객 컨트롤 및 소통 / 무게감을 덜고 퍼포밍하는 것 / 패터들의 정제화 등 지난 공연 때에는 아쉬웠던 점들이 모두 해결하여 말 그대로 한차원된 마술을 선보여주었다. 지난 공연을 본 지 5개월밖에 안되었는데, 대체 어떻게 그동안 자신의 강점은 유지하면서 단점들을 극복한 것인지 놀라웠다.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스스로를 깎아왔을지를 생각하면 경이로울 정도. 다음에 공연 하시면 꼭 보러 가야겠네.
3부 - ALT 마술사 / RYO 마술사

먼저 나오신 ALT, 이영우 마술사는 메모라이즈 루틴을 보여주었다. 사진에 나온 것처럼 1번부터 20번까지 관객들이 임의로 말한 단어를 붙이고 그것들을 외우는 퍼포밍인데, 해법이 말 그대로 외우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더 놀라운 마술. 일반적으로 이 마술을 하면 의자 / 연필 / 핸드폰 등 쉬운 단어들을 붙이기 마련인데, 오늘은 마술인 관객들이 모인 만큼 '블랙 앤 숄즈 모형', '장 콕토', '모리셔스' 등 각종 억까와 헤클러짓(물론 나 포함)이 등장했다. 그럼에도 그것을 극복하여 보여주신 것이 인상적.
딱 하나의 루틴으로 끝나버린 것이 아쉽긴 했지만, 그럼에도 보면서 굉장히 배울 것이 많던 연출이었다. 나 역시 수업 때 이 연출을 배웠기에 할수는 있지만, 단순히 '나 머리 이정도로 짱 좋다!'라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마술이 되기 위해선 관객에게 컨빈싱하는 서틀티 / 관객과의 소통 / 긴장의 끈 조절 등 신경쓸 것이 많은데, 가히 이의 모범 정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이 뒤에 매직 스퀘어 루틴이 준비되어 있으셨다고 하는데, 내가 정말로 못하는 것이 바로 이 루틴이라서 못본것이 너무너무 아쉽다 ㅠㅠ

오늘 공연의 마무리는 RYO 선생님께서 진행해주셨다.
거장 멘탈리스트이신만큼 빌렛 루틴 / 북테스트 / 쿠로스케 등 멘탈마술들을 퍼포밍하셨다. 내가 감히 평가할수 있는 분은 아니지만, 수업 때나 개인 공연때도 느꼈듯 '정말로 불가능해보이는 일'과 '극도로 발달된 인간의 영역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 사이의 어딘가를 잘 조절하여 연출하시는 RYO 마술사님의 능력은 언제나 리스펙... 특히 웃스갯소리로 오늘 <무한 마술 지옥> 중 '지옥' 파트를 맡으셨다고 하셨는데, 쿠로스케 연출을 보면서 '대체 어디까지가 연기고 어디까지가 진짜란 말인가...!'라는 충격의 지옥에 빠지게 만들기도 하셨다. 내년에 서울 올라가면 다시 수업 듣고 싶어진다...
종합 및 총평

한마디로 내겐 <무한 마술 지옥>이 아닌 <무한 마술 천국>과 같던 시간이었다.
앞으로 한국 마술계를 이끌어갈 여러 유망주분들의 연출을 보는 것도, 마술계의 중추가 된 마술사들의 발전상을 보는 것도, 그리고 마술계의 거장들이 보여주는 마술들도 너무너무 다 훌륭하고 재밌었다. 이 공연만을 보기 위해 KTX로 왕복 5시간을 투자한 것이 전혀 아깝지 않게 느껴졌고, 그동안 서서히 식어가던 나의 마술열정에 대한 불씨도 다시 살아날 수 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오늘 공연을 보여주신 많은 마술사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다음 기회에 또 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음에도 티켓팅 성공좀 할수 있길...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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