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2026년 02월 14일 문엔트리에서 관람한 마술 공연 <Identity> 리뷰이다.
문엔트리가 어떤 회사이고, 이곳에서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에 대해서는 이제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명실상부 우리나라의 최고 마술 공연회사이자 마술학원인 이곳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글을 통해 설명해온적 있기 때문.
그동안 문엔트리와 문엔트리의 자회사격인 비포선셋이 주최한 수많은 공연·행사·렉처 쇼를 꾸준히 관람해 왔지만, 최근 1년여간은 시간적 여건으로 인해 관록 있는 마술사들보다는 신예 마술사들의 무대를 주로 접해왔다. 신예 마술사들 역시 대체로 훌륭하고 만족스러웠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오랜 내공이 축적된 선배 OB 마술사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깊이 있는 무대를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인스타그램에서 OB 마술사들의 특별 공연〈Identity〉소식을 접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누구보다 빠르게 예매를 마쳐버린 뒤였다. 그리고 오늘! 공연관람을 진행했다.

<Identity>

이번 공연 <Identity>는 문엔트리 소속의 OB 마술사 5분이 진행하는 스테이지 팀 공연으로 총 1시간 20분간 진행되었다. 관객은 총 20명으로, 특별 공연인 만큼 거의 대부분이 마술인이었다. 특히 한지우 마술사, 고동재 마술사 등 개인 공연을 진행하는 여러 마술사들 역시 객석에서 함께 공연을 관람한 것이 특징. 다른 문엔트리 공연들과 마찬가지로 공연 중 자유로운 사진 촬영은 허용되었으나, 연출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속으로 촬영하는 행위는 가급적 삼가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정의되는가?에 대한 질문과 무대는 시작한다. 다섯 명의 마술사들이 교차하며 때로는 한 인간 안의 서로 다른 인격처럼, 때로는 각기 다른 존재가 하나의 사고를 공유하는 듯 이야기를 풀어가는 연출은, 마치 미국 드라마 'Sense8'이나 영화 '23 아이덴티티'를 떠올리게 했다. 이러한 설정을 바탕으로 이어진 본 공연 역시, 그 다양성을 고스란히 반영하듯 각기 다른 색채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무대였다. 하나의 연속된 서사를 따라 다섯 명의 마술사들이 자연스럽게 교대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냈고, 때로는 천천하고 잔잔하게, 때로는 에너지 넘치고 힘 있게 흐름을 이끌어갔다.
공연 내내 워낙 많은 액트들이 이어졌기에 이를 하나하나 나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신 마술사별로 특히 인상 깊었던 지점들만 간단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먼저 루카스 마술사님은 본인의 장기인 매니플레이션을 위시로 다양한 마술을 보여주셨다. 실크 / 케인 / 카드 등 정말 다양한 마술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볼 매니플레이션'. 관객들이 대부분 마술인이니만큼 이러한 매니는 자칫 실수하여 플래시가 발생하면 분위기가 싸해지기 마련인데, '이게 바로 FISM 위너의 클라스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의 실력에는 오로지 감탄만 나왔다. 그러면서도 관객에게 ‘와, 기술을 정말 잘한다’가 아니라 ‘와, 마술이 정말 쩐다…’라는 감탄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지점이야말로, 루카스 마술사님의 짬바가 아닐까 싶다.

박민호 마술사님 역시 본인의 장기를 살린 '에너제틱한 마술들'을 여럿 보여주셨다. 박민호 마술사님의 공연 ‘롤러코스터’에서도 느꼈지만, 공연 내내 활발하게 움직이며 말 그대로 무대를 뒤집어 놓는 그의 에너지는 언제나 관객들까지 공연 속으로 끌어들여, 끝까지 온전히 집중하게 만든다. 특히 마지막에 선보인 ‘미스터리 박스’ 루틴(가칭)에서는 공, 실크, 장갑, 큐브 등 다양한 소품이 유기적으로 활용되며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공연용 마술로서도, 대회용 마술로서도 어느 쪽에서 보아도 완성도가 높아 특히 인상 깊게 남았다.

오늘 공연에서 가장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분은 최신혁 마술사님이었다. 매직브라더스 듀오인 박민호 마술사님과 함께 탈출마술을 보여줄때는 한 없이 가벼운 개그캐처럼 보였지만, 그의 장기인 레비에티션을 연출할때는 더없이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공연 중간 중간 해설자 역할을 맡기도 하셨던 그의 마술 중 베스트를 뽑으면 역시 레비테이션.

제니 마술사님은 가장 비쥬얼적으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로프 마술, 실크 마술 등 퍼포먼스를 선보일 때에는 더없이 진지한 모습으로 몰입감을 끌어올리다가도, 멘트에서는 구수한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와 긴장의 완급을 절묘하게 조절해 주는 점이야말로 제니 마술사만의 큰 장점일 것이다. 오늘 가장 인상깊던 것은 단연 그녀의 장기인 '댄싱 케인'. 매번 볼 때마다 ‘해법을 알아도 진짜 너무 신기하다…’라는 감탄이 나오는 것이 바로 ‘댄싱 케인’인데, 이날은 거의 벽을 느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덕분에 언젠가는 꼭 댄싱 케인을 제대로 배워봐야겠다는 결심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최민수 마술사님은 본인의 장기를 살린 다양한 소품을 활용한 마술들을 보여주셨다. 마술을 위한 각종 도구와 장비 제작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답게, 다른 공연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색다른 표현 방식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무대 전체가 그의 손끝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교향악단을 지휘하는 지휘자를 바라보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역시 가장 인상 깊던 것은 그의 '깃털 액트'. 2차원 그림이 3차원 물체로 변하기도 하고, 색이 변하고, 어느새 순간이동을 하듯 자리를 옮기는 등 연속적인 변화가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갑작스럽게 비둘기가 등장하는 순간 객석에서는 일제히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인정하긴 싫지만… 그래도 비둘기가 나오면 ‘우와’ 소리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ㅠ)
후기

이게 바로 '클라스 차이'
누군가 마술공연을 묻거든 고개를 들어 문엔트리를 보라
굳이 말을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싶을 만큼, 그저 ‘정말 너무 좋았다’라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는 공연이었다.
물론 스테이지 공연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감상한 만큼, 일부 좌석에서는 플래시가 보이거나 중간중간 장치가 매끄럽게 작동하지 않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 어떤 점도 문제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순간들마저도 무대의 일부로 흡수해 버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클래스’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지난번 ‘디어 유진’을 시작으로, 올해 관람한 마술 공연들이 연달아 성공적이어서 유난히 행복했던 하루였다.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다듬어 올릴 예정이라고 하니, 아마 매번 전참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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