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2025년 06월 28일 참여한 엄준혁 마술사의 마술 오프라인 세미나 'Count to 5'의 후기이다.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나는 엄준혁 마술사의 Big Fan이다. 'Racef Ammory' 같은 한정판 렉처를 포함하여 그가 발매한 온라인 렉처는 물론이고 히든 점스 / 뉴도어 세미나 등 오프라인 세미나도 한번 빼고 전참했을 정도로 열렬한 신봉자이다. 엄준혁 마술사의 뛰어난 손기술과 더불어 독특한 마술철학, 예술성, 집요함의 조합은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느낌의 마술을 보여준다. 나아가 전달력 높은 강의실력까지 겸비하였기에 그의 오프라인 세미나는 항상 참석하면 대만족 그 이상을 느꼈었다. 그랬기에 이번에 또다른 세미나를 연다고 공지가 올라오자마자 가장 첫타임 가장 첫번째로 신청 완료.
이번 세미나의 제목은 ' Count to 5'로, 엄준혁 마술사가 애정하는 카드마술 5가지를 담은 세미나였다. 단독으로 발매하려 했던 마술, 그의 공연에 들어가는 마술, 아예 발매하지 않으려 했던 마술들이 포함되어있었으며 렉처 시간은 총 3시간 반. 진행은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노웨어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는데, 알 사람들은 아는 그의 팟캐스트가 진행되는 곳이라 익숙함과 반가움이 느껴졌다. 시원한 에어컨과 더불어 20명의 참가자가 입장하고 난 후, 오늘 세미나는 시작하였다.
Count to 5 리뷰
Orchestra Force
연출) 관객이 직접 덱을 든 상태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카드 한장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 카드는 마술사가 포스한 카드이다.
이번 세미나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자,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연출. 참가자 20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원하는 곳에서 멈추기도 하고, 덱을 섞기도 했는데 모두가 맨 마지막에 같은 카드를 들고 있던 모습은 전율을 일으킬 정도. 말 그대로 마술사가 한명의 지휘자가 되어 전체를 조율하는 느낌이 들던 모습의 연출로, 공연 때 사용한다면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울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해법적으로 보아도 'Cut Deeper Force'와는 관객 자유도의 차원이 다른 느낌이라 만족스러웠다. 물론 아주 새로운 방식은 아니고 기존에 존재하던 방법에서 기반한 것이긴 하지만, '명품은 디테일이 만든다'는 표현처럼 아주 작은 터칭 하나로 포스의 성공률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킨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연출이 특히나 나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기존의 나의 가치관 하나를 부숴버렸기 때문. 그동안 나는 '만약 완벽한 카드 포스를 할 수 있다면 어떤 연출을 보여줘야 가장 효과적일까?'에 대해서 항상 '관객이 소수거나 지인이면 마인드리딩 / 다수면 프레딕션'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그것이 송투리째 무너졌다. '과연 엄준혁이다'라는 생각이 들던 파트.
Open Triumph : Final
연출) 뒤죽박죽 앞뒤로 섞은 모습을 명확하게 보여준 후 정렬되는 오픈 트라이엄프. 그런데 이제 마술이 끝난 후에도 관객에게 카드를 건내줄 수 있다.
그 유명한 다니 다올티즈(Dani Daortiz) 마술사의 오픈 트라이엄프를 바리에이션한 버전이다. 기존 다니 다올티즈의 원안은 그 자체로도 이미 하나의 레전드이며, 가렛 토마스 마술사를 필두로 하여 다양한 마술사들이 자신만의 터치를 가미해왔다.(국내의 정지원 마술사가 한 Another Open Triumph도 난 상당히 좋아한다) 한순간에 뒤죽박죽된 패킷이 정렬되는 모습을 비쥬얼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마술이 끝난 후 '확인해봐도 될까요?'라고 하는 질문에는 제대로 된 답변을 못하던 단점을 엄준혁 마술사가 극복한 방식이 메인이던 연출.
전체적인 흐름은 같지만 여러 디테일이 변화되었기에 실제로 연습해보면 기존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난다. 어떤 구간에서는 명확히 핸들링이 쉬워졌지만 변화된 핸들링 때문에 기존 연출보다 아쉬운 점 역시 다수 생겨 일장일단의 연출이라 생각한다. 기존에 오픈 트라이엄프를 할줄 몰랐거나 끝난 후 클린업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굳이 이런이런 요소를 넣어서 장점을 희석하면서까지 클린업을 해야하나?'라는 의문이 들던 연출.
논외지만 작년에 다니 다올티즈가 한국 내한했을 때 오픈 트라이엄프 후 클린업에 대해서 질문한적이 있다. 이때 그는 '이미 관객들은 시각적으로 정렬이 되었기에 또 확인을 해야할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그리고 만약 진짜 보고 싶다고 느끼면 보여주면 됩니다, 이런식으로 말이죠' 라고 답하며 자신만의 클린업(?)을 보여주었는데 특유의 카오틱한 움직임을 통해 카드를 건내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 당시 '클린업은 오로지 마술사만 신경쓰는 요소'라고 결론지었기에 더더욱이나 본 연출을 보며 아쉬움이 남았다.
A Thousand Tricks
연출) 관객이 카드를 한장 고르고 마술사는 덱에 돌려받고 섞는다. 그리고 마술사는 관객에게 이렇게 묻는다 '카드를 어떻게 찾아볼까요?' 그리고 관객이 말한 방식으로 카드를 찾아낸다.
본 세미나를 신청할때 가장 의문이 들던 연출. 경험상 관객에게 '카드를 어떻게 찾아볼까요?'라고 물었을 때 어떤 대답이 나오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렉처를 들으며 깨달았다. 아, 이마저도 연출의 일부구나!
사실 해법적으로는 특이할게 전혀 없던 연출이다. 본 연출에서 사용되는 기법이나 트릭은 모두 기존에 널리 알려진 방식, 혹은 엄준혁 마술사가 이미 공개한 방식의 해법기에 일부 실망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도 처음 연출을 보자마자 어떤 식으로 해법이 진행되는지 알아채고 실망했으니까.
그러나 내가 높이 사는 건 역시나 디테일. 왜 이런 패터 다음에 이런 패터가 와야 하고, 마술의 순서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며, 어떤 타이밍에 어떤 말을 해야하는지 등에 대한 설명은 들으면 들을수록 감탄만 나왔다. 실제로 백번 이상 시연해봤다는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수 많은 디테일들은 당장 크게 와닿지는 않을지 몰라도 퍼포밍하면 할수록 그 진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이 연출의 핵심은 해법이 아니라 나중에 관객이 '마술사보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카드를 찾아달라고 했는데 그 현상을 보여줬어!'라는 기억을 남기는 것이기도 하고.
+) 혹시나 하여 첨언한다. 세미나 중에도 언급하지만, 분명 본 연출은 그의 옛 작품인 '파이어워크'의 루틴 '노 찬스'와 어떤 면에서는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연출 자체도 굉장히 다르고, 해법적으로는 천지차이이기때문에 같은 방식일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Coincidencia Minima
연출) 마술사와 관객이 덱을 각각 완전히 섞는다. 관객과 마술사가 거울을 마주한듯 서로의 움직임을 본따서 행동하고, 두 명은 놀라운 우연의 일치를 보여준다.
연출만 봐도 알겠지만 그가 이전에 발표한 작품 'Coincidencia Total' 연출의 일부이다.(정확히는 Phase 0 ~ 1)
기존의 코인시덴시아 토탈이 긴 호흡을 가진 연출이었다면, 본 연출은 보다 간략한 느낌의 연출이다. 다만 추가되는 하나의 킥이 있는데 이것이 참 미묘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신기한 트릭처럼 다가왔을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이게 뭐지' 싶게 다가왔을 트릭인데 확실한건 누구나 부담없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것은 아니다라는 것.
해법적으로 기존의 방식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던 파트를 사용하기에 불만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과연 이 연출을 이런식으로 할까?'라는 생각을 지울수는 없던 파트.
System 51
연출) 관객이 말한 카드를 관객이 직접 자신의 직관력을 이용하여 찾아내는 마술(홍보 문구에 적힌 그대로이다)
사실 위의 연출설명만 보고 이건 진짜 대박이다! 라고 기대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가장 실망한 파트. 아마 Q&A 시간에 이 마술에 관해서만 질문이 집중되서 나오고, 반론이 여러번 제기된걸 보면 나만 이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가장 논란이 되는건 바로 해법. 위의 연출을 만들기 위해 마술사들이 생각할법한 기술 중 가장 대중적인 방식을 사용하는데 그 타이밍이 공교롭게도 관객이 가장 카드에 집중하고 있는 순간이란 것이다. 물론 이 기술이 효과적인 기법인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기술이 이런 연출에서도 사용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라는 생각.
연출적으로도 크게 뛰어난 것이 없다고 느꼈다. 클래식한 '논리 vs 직관'의 플롯을 가져오면서도 추가되거나 나아진 것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결국 '관객이 물리적으로 고른 카드 한장을 찾아내는데 심지어 한번 틀리기까지 하는 마술'이기 때문이다. 시스템 1, 시스템 2라는 이야기 자체는 흥미로울지 모르겠지만 관객의 기대를 매우매우 낮춰놓고 결국 해내는 연출의 효과가 좋은지는 의문. 차라리 보리스와일드 마킹덱을 쓴 TTTCBE 방식이나 관객이 고른 카드를 컨트롤 후 클래식포스 갈기기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종합 및 총평
새로움보단 익숙함이 느껴져
만족감보단 아쉬움이 남던 시간
오늘 세미나에서 얻은 것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케스트라 포스는 그 자체로도 환상적이며 다른 마술에서 사용가능한 일부 아이디어를 배울 수 있었고, 사우전드 트릭스에서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디테일들과 엄준혁 마술사의 경험을 얻어갈 수 있었으니까. 오픈 트라이엄프 파이널이나 코인시덴시아 미니마, 시스템 51도 기존 엄준혁 마술사의 스타일을 처음 경험한 사람이라면 전부 신기하거나 얻어갈게 매우 많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본 세미나의 참가생의 대부분, 아니 전부가 엄준혁 마술사의 팬일 것이란 것. 애초에 모집을 엄준혁 마술사의 인스타 공지와 구글 폼으로 했으니 카드 마술을 좋아하던 사람들이라도 그의 팬이 아니라면 본 세미나에 참가했을리가 없지. 그런데 본 세미나의 내용 절반 가량은 이미 그의 렉처들에서 접할 수 있던 내용이었다. 언타이틀드 렉처, 이안 컬렉션, 코인시덴시아 토탈을 모두 봤다면(그리고 이런 사람이 수강생의 2/3는 넘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과연 5+1만원을 내고 세미나에 참가한 값어치가 있다고 느꼈을까? 심지어 마지막 두 연출, 코인시덴시아 미니마와 시스템 51은 합해서 1시간도 안되는 시간동안 진행되었고 그마저도 기존 렉처들에서 나온 내용들과 겹치는 내용이 많다보니 사실상 3개의 연출을 6만원에 배운 셈이니 더더욱 아깝다고 느낄수도 있단 것.(첫 시작이 오케스트라 포스라는 빵! 터지는 것으로 시작하다보니 뒤로 갈수록 별로같이 느껴진 것도 있고...)
물론 나는 렉처나 세미나를 볼 때 가격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5천원짜리 쓰레기 렉처 10개를 사서 하나도 배울게 없는것보단 10만원짜리 렉처 한개를 사도 정말 소중하게 배워갈 한가지가 있다면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면에서 이번 세미나에서 오케스트라 포스의 아이디어를 배웠으니 후회까지는 안한다만, 기존 그의 언타이틀드 렉처나 코인시덴시아 토탈 등과 비교시에 아쉬움이 남는것은 확실한 사실.
글을 쓰다보니 예전 그의 작품 'Racef Ammory'를 보고 리뷰를 쓰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와 비슷한 감정을 지금 느끼기에, 그당시의 글 일부를 캡쳐하여 첨가함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여전히 나는 엄준혁 마술사를 좋아하지만, 'Big Fan'에서 'Big'은 내려놓아도 되지 않나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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