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2025년 06월 27일 관란함 아르카나의 클로즈업 마술공연 '원테이블 매직' 관람 후기이다.
아르카나는 현재 국내 유일의 마술잡지로, 마술잡지 외에도 다양한 렉처 발매와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하여 국내 마술계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곳이다. 이런 아르카나가 그동안의 마술 렉처 / 행사 진행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마술 공연'을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원테이블 매직'이다.
이전 매직바인 트릭에 있을 때부터 명성이 자자했던 마술사인 '미스터 펄 마술사'와 마술애호가를 넘어 뛰어난 마술사가 된 '박중수 마술사', 그리고 올해 중순부터 합류한 '바이블 마술사' 세 마술사가 각각의 소제목을 붙인 채 운영되는 이 공연은 한 타임에 단 6명만관람을 하는 소규모 클로즈업 마술공연이다. 이은결 / 최현우 마술사로 대표되는 스테이지급 마술이나, 내가 자주 리뷰한 문앤트리/비포선셋의 팔러급 마술과 다르게 1m 거리에서 마술을 직접 즐길 수 있는 기회이기에 작년 11월 시작했을 때부터 관람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 미루다보니 이제서야 관람을 하게 되었네.
이번에 관람한 원테이블 매직은 사당역 도보 10분거리에 위치한 스튜디오 아르카나에서 진행되었다.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서울의 이름난 마술샵 / 마술공연장 / 마술학원 등이 이 사당-이수 라인에 밀집되어 있다. 나도 이전에 마술 오프라인 행사 등으로 여러번 방문한적이 있는 곳.
스튜디오 아르카나는 공연장이 있을 것이라 기대되지 않는 주택가 한복판에 위치한다. 처음 찾아가는 사람이라면 헷갈릴 수 있지만, 안내 표지판만 잘 보고 따라가면 된다. 입장은 공연 20분 전부터 가능.
입구부터 심상치않은 느낌.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잘 꾸며진 형태의 공간이 관객을 반겨준다. 이전 비포선셋의 무대가 중세 귀족들의 다락방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 곳은 20세기 초 마술공연장을 보러 온 느낌이랄까. 시원한 에어컨과 더불어 웰컴 드링크를 마시고 있다보면 공연이 시작된다.
마술공연 - Trick
내가 오늘 관람한 공연은 '미스터 펄' 마술사님의 공연 'Trick'.
지금 마술인들에게는 아르카나의 렉처나 행사 진행으로 더 익숙하겠지만, 명동에 위치한 마술바 트릭에서 10년간 퍼포밍을 하기도 했고 국내외 다양한 대회에서 1위를 수상했던 마술사인만큼 이전부터 꼭 공연을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오늘 공연의 관객은 총 5명. 나 외에는 커플 한 쌍 / 10년지기 친구라는 여성관객 2분이 관객으로 참여하였다. 한 가지 재밌던 점은 나 이외에는 모두 비마술인 관객이었다는거? 사실 대부분의 관객이 비마술인인게 당연하겠지만, 어째서인지 내가 그동안 본 공연은 거진 80%가 다 마술인 관객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 그동안 내가 본 공연들이 다 너무 매니아집중적인 공연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던 포인트.
'미스터 펄' 마술사의 자기소개 마술로 시작된 공연은 총 70분동안 진행되었다. 익숙한 카드마술부터 시작해서 에그 백, 쿠로스케, 동전마술 등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공연이 진행되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공연 도중 사진촬영이 얼마든지 허용된다는 것? 일반적인 마술공연에서는 해법 노출등을 막기 위해 사진촬영이 금지되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자신감이 엿보이던 요소였다. 실제로 나도 공연 중간중간 촬영을 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동안 공연에 매료되어 사진 찍을 생각을 못하고 넘어간 것도 많았다. 아래는 공연 중 중간중간 생각날때마다 찍은 사진들(급하게 찍는지라 일부 흔들림이 있다. 사실 블로그에 리뷰할 생각만 버렸다면 사진은 찍지도 않고 공연에만 온전히 집중했을듯.)
트릭'바' 근무 특성상 관객이 술을 마셔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훅 와닿는 구조의 마술이 장기였다는 그의 말처럼 오늘 본 마술들은 모두 직관적이면서도 효과가 뛰어났다. 마술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카드마술이라면 아칸이나 TNR을, 동전마술이라면 투명 매트리스나 못썬팜을 이용한 마술을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오직 매니아들에게만 어필되는 것일뿐, 대다수의 비마술인 관객에게는 쉽게 이해되면서 비쥬얼이 좋은 마술이 훨씬 효과적이다. 나도 머리를 크게 쓰거나 해법에 대해 추측하려 하지 않고 온전히 즐기다보니 70분이 훅 가버려서 너무 아쉬웠다.
후기
'이게 진정한 프로의 공연이다'를 느낄 수 있던 시간
그동안 참 많은 마술공연을 봤다. 블로그에 리뷰를 상세히 올린 것도 있지만, 아마추어마술사의 공연 / 학회 갈라쇼 초청 공연 등을 포함하면 족히 20개는 넘을 것이다.(사실 보고 실망하거나 화난 공연은 리뷰 자체를 잘 안하니까...) 그러나 많은 공연에서 연출자들은 '내가 가진 기술의 자랑'이나 '알고 있는 해법을 연출'하는 느낌을 보여주곤 한다. '자, 난 이거 할 수 있고 넌 못하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 그럼 박수나 쳐'라고 잘난척하듯 공연하는 마술사들을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 나는 '관객이 마법과도 같은 시간을 경험'하게 해준다는 마술의 본질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자. 오늘 본 공연 중 생전 처음보거나 아주 놀란 마술은 없었다. 다른 마술사의 공연에서 보거나 내가 이미 해법을 알고 있던 마술도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오늘 마술을 보는 내내 너무 행복했다. 이미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마술일지라도 그것이 뛰어난 마술사의 손에서 이루어지면 얼마나 아름답게 변할 수 있는지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뛰어난 기술은 물론이고, 미스디렉션, 관객컨트롤, 긴장의 이완, 템포조절과 관객에 대한 배려까지. 마술을 업으로 삼아 남들과 나눈다는 것이 이런것이다를 제대로 보여준 '미스터 펄 마술사'님을 보며 박수가 절로 나오곤 했다.
마술 외적인 서비스들도 너무 훌륭했다. 5만원이란 가격은 사실 요즘 마술계의 관람비로는 높은 가격이 아니다. 그러나 마술을 떠나 생각해본다면 한시간에 5만원이란 돈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그 비싸다고 안가서 망해간다는 영화도 2시간에 만오천원이 안되고, 대학로 연극은 2만원대, 심지어 호캉스도 한시간당 비용으로 치면 4만원을 넘는 곳이 드무니까. 그런데도 다른 많은 마술공연에서는 이를 망각하는 것 같다. 5만원이 넘는 공연을 보는데 티켓 하나 / 마실 물 한잔 주지 않는 곳도 있고, 심지어 공연 내내 공연자 외 스태프의 소음이나 냉난방 문제로 공연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이런 불편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넘어 편안하기까지 했다. 시원한 냉방과 더불어 맛있는 레몬에이드와 함께 멋들어진 티켓도 제공해주었고, 공연 중에는 관객에게 여러 기념품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지만, 이런 섬세함이 명품을 만든다는게 내 생각인지라 공연 내내 미소가 지어지던 포인트.
간만에 정말 행복한 금요일 저녁을 보낸 오늘. 나오는 길에 바로 다른 마술사님의 공연도 예약했다. 다음번 공연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
+) p.s. 오늘 오신 커플분들은 4주년 기념일이었다고 했는데, 선물로 애니벌서리 왈츠 마술의 결과를 받아가셨다. 미스터펄 마술사님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센스가 엿보이던 모습. 커플분들은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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