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서론
기계식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결국은 이 라인업의 구상이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물론 하나의 시계로만 시계생활을 끝낼 수 있겠다면 좋겠지만 시계를 취미로 하는, 소위 시계인이라면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알 것이다.
당연히 멋진 시계, 원하는 시계를 모두 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한정된 자원으로 취미를 즐겨야 하는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 결국은 특정 기준을 세워 그에 합당한 시계들을 모으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을 바탕으로 하여 라인업을 구상해야 하는가? 10년도 안된 경험이지만,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0. 들어가기에 앞서
시계를 하나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첫 시계를 구매할때부터 '라인업을 이렇게 가져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결혼 기념 예물, 승진 기념, 생일 등 다양한 이유로 특정 시계를 처음 시계로 기추한 이후, 점차 시계 생활에 빠져들면서 라인업을 늘리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최소 한두개의 시계를 가진 사람이 본인의 라인업을 늘리는 상황에서의 모습을 기준으로 삼고 논의하도록 하겠다. (원탑 시계 or 투탑을 처음부터 생각하는 상황은 배제한다는 뜻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한가지 당부할 것이 있다. 바로 '라인업의 조건이라는 것에 매몰되지 말자'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시계인들이 육/해/공 이나 백/흑/청 등의 조건 때문에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지 않거나, 착용할 일이 떨어지는 시계를 다수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 라인업의 구성요소라는 것이 자신이 명확히 무엇을 좋아하고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정표로서의 역할을 벗어나 강제하고 되는 일이 되게 되면 그것은 그야말로 주객전도라는 것을 잊지 말자.
1. 갯수를 몇개나 가져갈 것인가?
첫번째로 논의해야 할것은 갯수이다. 당연히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본글의 취지와 맞지 않기 때문에 제외하겠다. 세상에는 아름답고 멋진 시계가 참 많다. 멋진 시계를 보면 기추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제한된 금액이 아니더라도 많은 갯수로 인해 필연적으로 멈춰있어야 하는 시계들의 모습이라던가, 시계를 전시해둘 공간, 오버홀의 비용적 측면 부담 등 다양한 요소로 인해 우리는 한정된 갯수안에서 시계질을 해야한다. 이러한 면에서 일반적인 시계 생활의 적정 시계 갯수는 2개 ~ 5개 정도이다.(쿼츠는 제외) 정확한 시계 갯수를 미리 딱 정한다! 라는 느낌보다는 시계 생활을 해보면서 점차 늘려가다 보면 각자에게 맞는 적정한 숫자를 알게된다는 것이 정확한 것 같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적정 시계 숫자는 3개 or 4개 이다.
원탑은 애초에 논의에서 제외하기로 하고, 투탑의 경우에는 많이들 하는 라인업임은 분명하나 일반적으로 스포츠/드레스 나 브레이슬릿/가죽 으로 구분짓는 만큼 특정 상황에서는 차야할 시계가 한가지로 너무 좁혀지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5개 이상이 되면 필연적으로 시계들이 자주 멈춰있게 되는데, 와인더를 안쓰는 입장에서는 매번 시간을 맞추는 것이 번거롭기도 하고 관리도 어렵다고 느낀다.
2. 목적에 따른 분류
목적에 따른 분류는 간단히 말해 스포츠/드레스 워치의 구분을 말한다. 보통 말하는 육해공드도 사실 넓게 보면 이 두개로 분류가 된다고 생각한다. 시계를 원탑이 아니라 다양하게 가져가는 것은 특정 시계에 질리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복장과 장소 및 목적에 따라 다르게 차기 위한 목적임도 분명 있다.
물론 같은 드레스워치라도 정장에 어울리는 '데드 드레스워치'부터 반팔 등 케쥬얼한 복장에도 잘 어울리는 '케쥬얼 드레스워치'까지 다양한 분류가 있다. 더불어 하나의 동일한 시계를 사람마다 다른 목적으로 착용할수도 있다. 롤렉스 데이트저스트가 아주 좋은 예시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는 분명 쥬빌레 브레이슬릿 - 플루티드 베젤 등의 형태를 보면 드레스워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스틸소재 - 100m 방수 - 누꺼운 두께 등을 고려하면 스포츠시계로 분류하지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특히나 세부 세팅요소에 따라서) 예거르쿨트르 리베르소도 태생은 폴로워치, 즉 스포츠워치로 개발되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드레스워치로서 취급하여 착용중이다.
즉 결국 중요한 것은 '사용자가 생각하는 용도'라는 것이다. 그 시계 자체가 가지는 특성도 중요하지만, '이 시계를 어떻게 사용하기 위해서 구매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아래와 같은 생각으로 시계 라인업을 꾸린다면..
음.. 나는 주중 근무 복장은 케쥬얼 정장이고 가끔 데드한 정장을 입는 편. 주말에는 필드도 나가고 주로 케쥬얼하게 입으니까... 데드 드레스워치 하나와 필드용 스포츠워치 하나... 그리고 중간에 적절히 조율할 케쥬얼한 드레스워치 3개로 구성해야겠다...
위의 상황이라면 데드 드레스 - 케쥬얼 드레스 - 스포츠 시계를 구성을...
1) 파텍 필립 칼라트라바 - JLC 리베르소 -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돔 오이
2) JLC 리베르소 -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플루 쥬빌 - 파네라이 PAM 233
3)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플루 쥬빌 - 롤렉스 요트마스터1 - 롤렉스 딥씨
등 다양하게 할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보이듯 롤렉스 데이트저스트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데드 드레스 ~ 스포츠 까지 오고갈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비단 롤렉스 데이트저스트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즉 특정 시계를 하나의 고정된 요소로 생각하지 말고, 본인의 라인업에서의 특정 포지션으로 잘 배치하여 생각하라는 것. 물론 이 역시도 너무 얽매일 필요 없다. 처음에는 케쥬얼 드레스워치로 넣었던 시계가 라인업 변화에 따라 슬쩍 데드 드레스로 간다고 한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으니까. 다만, 이러한 목적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 기추하고 나니 전부 다이버 워치라서 결혼식장에 마땅히 찰 시계가 없어진다면(물론 서브마리너를 정장에 찬다고 한들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난감해질 수 있으니 용도를 고려하기는 해야한다.
나는 위의 갯수조건과 더하여 3구와 4구를 구성한다면..
3구 : 데드 드레스워치 - 케쥬얼워치 - 스포츠워치
4구 : 데드 드레스 워치 - 케쥬얼 드레스워치 - 스포츠 워치 - 다이버 워치
정도로 구성한다.
3. 라인업 내부의 밸런스
많이들 놓치기 쉽지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으로 '라인업 내 시계들의 밸런스'는 반드시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카시오 시계가 파텍필립의 시계보다 무조건적으로 떨어진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가격, 인지도, 브랜드 파워 등을 고려해야 하며, 소위 이러한 밸런스가 확 차이나게 되면 디자인 / 마감 등 디테일에서도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고루고루 시계를 찬다는 것에서 어긋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나마의 참작해줄 사항이라면 드레스-스포츠 워치간 밸런스. 일반적인 스포츠 워치는 그 목적성 때문에 비슷한 가격대의 드레스워치보다 마감이나 디테일면에서 투박한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스포츠워치는 가격대가 올라가더라도 드라마틱한 차이가 나지 않는 반면, 드레스워치는 가격이 올라갈수록 그 마감과 디테일의 차이가 극명하게 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오히려 스포츠워치는 드레스워치보다는 조금 낮게 포지션을 가져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금액이 되었든, 브랜드가 되었든지간에) 다만 반대의 경우에는 그다지 동의해주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드레스워치로 랑에1 + 스포츠워치로 씨마스터 : 용납 가능 O
드레스워치로 미도 패트리모니 + 스포츠워치로 아쿠아넛 : 언밸런스. X
이라는 것. (참고로 씨마스터와 랑에1은 가격차이가 리테일가 기준 10배가까이 난다..)
물론 시계의 가치라는 것이 꼭 브랜드나 마감, 가격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동등하게 시계를 아껴주려면 어느정도 밸런스가 맞긴 해야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 이유로 내 라인업 내의 시계들은 언제나 가격차이가 최대 차이나봐야 2배를 넘지 않도록 유지하고 있다.
4. 그 외 요소들
그외로 많이들 고려하는 요소들이 있다.
우선 색상은 의외로 크게 중요하지 않은 요소라고 생각한다. 색상은 크게 봐서 라인업 내의 목적에 포함된다고 생각하기 때문. 물론 시계를 올 화이트나 올 블랙으로 구성하면 활용도가 떨어지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흰검파! 나 흰검파녹! 으로 구성해야 할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색깔 맞추기에 집중하여 스트레스 받아봐야 결국은 특정 색은 잘 차지 않게 되기 마련이다. 그나마 흰검파 정도까지는 활용도가 있다고 쳐도, 녹색 / 적색 / 노란 색 등은 셀럽이 아니고서야 꼭 필요한 상황은 없다고 다짐할 수 있다.
사이즈는 라인업 구성의 측면이 아닌 그 이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굳이 작은 시계부터 큰 시계까지 다양하게 보유할 필요는 없다. 개인의 손목에게 맞는 시계의 적정 사이즈는 분명히 정해져있다. 드레스워치는 조금 작게 차고, 스포츠 시계는 조금 크게 찬다한들 그 역시 무한정의 범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보통 한국인의 손목인 17cm 둘레 / 5.5-6cm 너비 정도의 범위라면 드레스는 36mm ~ 39mm / 스포츠는 38mm ~ 42mm가 적정선이라 생각한다.
자동/수동/쿼츠 의 밸런스 역시 크게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전부 수동시계, 혹은 전부 자동시계거나 올 쿼츠여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수동시계만이 주는 와인딩의 매력, 자동시계만이 주는 무게추의 흔들거림, 쿼츠만이 주는 정확함 등의 매력은 분명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꼭 라인업을 구성함에 있어서 중요한 핵심요소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치자면 드레스는 수동 / 스포츠는 자동 이라는 나의 기준이 있긴 하지만, 이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육해공은 위에서도 말했듯 목적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기준 자체가 그렇게까지 와닿지도 않는다. 육이라고 써놓고 어떤 사람은 카키필드 같은 필드워치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데이토나 같은 레이싱 시계를 얘기하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드레스워치를 말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파일럿 시계를 차고 비행기를 운전하지도, 다이버 시계를 차고 다이빙을 하지도 않는 요즘 시대이기 때문에, 이를 육해공으로 분류하기보다는 목적으로 분류한느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브랜드(스와치 / 리치몬드 / 독립)라던가, 디자인(센터세컨드 / 스몰세컨드 / 초침 없음) 등 다양한 분류가 있을수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위에서 논의한 내용에 다 포함되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더이상의 논의는 줄이고자 한다.
5. 그렇다면 나는??
위의 내용들을 내 입장에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시계 라인업의 구성에서는 갯수 / 목적 / 밸런스를 고려한다.
2) 갯수는 3-4개가 적당하다
3) 목적은 데드 드레스 - 케쥬얼 드레스 - 스포츠 - 다이버 정도로 구분한다.
4) 라인업 내 브랜드의 급 규모 / 가격은 최대한 맞춘다.
이러한 바탕으로 하여 나는 어떤 식으로 라인업을 구상해왔고, 최종적인 라인업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는 다음 글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시계 > 시계 관련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계'를 취미로 한다는 것에 관하여 (2) | 2024.11.1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