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2024년 04월 06일 마술잡지 아르카나와 대학생 마술 동아리 연합(KUMCC)의 마술 경연대회 관람 후기이다.
크게 2부로 구성된 행사로 1부에서는 총 6명의 대학생이 마술 동아리 대회를 보여주었고, 2부에서는 조승우 마술사의 렉처쇼와 한지우 마술사의 게스트 쇼가 진행되었다.
행사가 진행된 장소는 아르카나의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한 적 있다면 익숙할 문래역 주변의 스페이스T 소극장.
매번 올때마다 느끼지만 처음 오는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든 위치에 존재한다. 주변 상가들이 워낙 많은데 4층이 있는 건물은 딱 하나라서 그 건물을 찾으면 되긴 하지만, 정말 여기가 맞나..? 싶은 느낌이 드는 위치이다. 행사 당일에는 안내표지판이 있긴 했지만, 그것도 건물 바로 앞에만 위치하는 수준이라서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길을 한참 헤맸을 것이라 생각한다.
1부 - 대학생 마술 경연대회
1부는 대학생 마술 경연대회였다. 각 대학별로 한명씩 참가자들이 나왔는데 각자 굉장히 다양한 방식의 연출을 보여주어서 인상깊었다. 실제 공연 당일에는 랜덤 제비뽑기로 순서를 진행하였는데 차례로 몇자적 어보면...
광운대 Trick - 유진권
클래식한 스테이지 마술 그자체. 전형적인 '마술사'하면 떠오릴 복장부터 음악, 퍼포먼스까지 대학생스럽지 않은 연출을 보여주었다. 실크 마술 / 우산 마술 / 링킹링을 보여주었는데, 우산 마술 중에서 비둘기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대학생 대회에서 이런것을?!) 링킹링은 클래식한 4링 연출이었는데, 크게 버벅임 없이 깔끔한 연출이었다.
서울대 몽환 - 김서준
풀어스나 피즘 클로즈업 등에서 자주 보이는 '클로즈업-스테이지' 형태의 마술을 선보였다.
컵 / 카드 / 볼을 이용한 액트였는데 현상 자체는 굉장히 비쥬얼하면서 독창성이 가장 뛰어났다.
다만 아무래도 스테이지의 환경상 거리가 조금만 멀어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을 것 같고(나는 앞에서 3번째 줄인데도 간신히 보였으니) 액트 특성상 음악과 박자 타이밍이 정확히 맞아야 멋질텐데 연출자의 긴장 탓인지 2-3초씩 어긋난게 아쉬운점. 스냅딜, 래핑 등 기술은 굉장히 뛰어나서 소위 적당한 거리에 카메라 하나 두고 풀 스크린으로 따로 보여주는게 있었으면 싶었던 액트.
카이스트 Mindfreak - 연제욱
클래식한, 그러나 비쥬얼 끝판왕인 댄싱 케인을 공연했다.
굉장히 많은 연습을 한게 보였고, 또 모든 참가자중 본인이 준비해온 것을 가장 완벽히 소화한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액트 특성상 시간이 조금 짧을 수 밖에 없는데, 다른 하나를 더 준비해서 같이 보여주었으면 싶었던 연출.
한양대 매직아이 - 문준영
본인의 자전적인 스토리를 곁들인 3개의 연출(큐브, 술마시기, 카드마술)을 선보였고 마지막에는 이 모든게 예언되어 있는 프레딕션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앞선 세 사람이 본인이 준비해온 것을 프레젠테이션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많은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는 마술을 보여준게 특징이었는데, 본인이 무대 자체를 잘 즐기는 것이 보여서 보기 좋았다.
다만 마술 자체는 6명 중 제일 임팩트가 떨어진다고 느꼈고(아무래도 쉬운 마술 3가지다보니.. 내가 셋다 해법을 알아서일수도 있고.) 소통은 좋지만 스크립팅이 잘 안되어 있으며, 연출 중 '이건 대체 왜 넣은거지?' 싶은 점이 많은 것은 아쉬운 점. 같은 동아리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온 참가자이기도 했는데(FM 선창 등을 보니), 이들의 광적인 호응이 없었다면 어땠으려나 싶은 연출.
충남대 쥬빌리 - 최준우
'선택과 운명'이라는 주제를 기반으로 한 클로즈업 연출을 선보였다.
동전의 이동과 카드의 일치(코인시던스) 플롯을 보여주었는데, 잔잔하면서도 느낌있는 진행이 마음에 들던 연출자.
개인적으로는 마술 자체가 내가 퍼포밍하는 스타일과 가장 유사해서 편하게 보기도 했고, 내가 생각치도 않았던 요소들을 배울 수 있었던 연출이었다.
부산대 매진PNU - 허준범
CD 매니플레이션을 보여주었는데, 초반 등장할때 헤드폰을 끼고 등장한 점 등을 고려하면 FISM 1위 수상자인 한설희 마술사의 오마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음악과 곁들인 CD 매니를 선보이는데, 본인의 우월한 피지컬을 적극 활용하여 동작들이 크고 절도있게 보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CD 매니 액트 자체도 프로덕션, 베니싱, 프렌스포지션, 칼라체인지, 사이즈체인지 등 다양한 현상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보여주어서 인상적이었던 연출자.
이렇게 6명의 액트가 끝난 후 투표의 시간이 있었다. 관객들이 각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두명씩 투표한 것을 종합하여 심사위원 3명 의견과 종합하여 최종 순위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반영 비율에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정확한 반영 비율 자체를 공개하진 않았지만, 진행자의 말에 따르면 관객 점수가 절반에 가깝게 반영된것으로 보였는데 이러면 실제 무대의 완성도보다도 본인의 출신 대학 or 지인을 많이 데려온 것이 더 높은 점수를 받기에 유리하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대회 자체가 엄청나게 공신력이 있거나, 다른 대회의 참가자격을 위한 예선전으로 작용하거나, 혹은 부상이 매우 큰 편은 아니기에 완성도보다는 모두를 즐기게 한 사람이 더 좋게 평가받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공정성이 떨어진다'라고 느낄법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투표 시간 중 의도치 않게 엿들은 몇몇 관객(아마 동아리원들이겠지)의 타참가자 견제 발언이나 행동은 이러한 아쉬운 점을 조금 더 가중시켰기에, 재미지게 무대를 본것과 별개로 씁쓸한 뒷맛이 남던 1부.
c.f.) 본 대회의 총 상금 170만원 상당이며, 이는 국내 마술계의 여러 대회를 고려시 큰 상금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이정도 규모의 대회에서 저정도 상금인 것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마술계가 유난히 상금에 짠편인지는 모르겠으나(전국 규모도 아니고 시나 구 급 규모의 음악/미술/체육 대회만 되도 저정도는 가뿐히 넘으니..) 마술계의 여러 도구들/렉처 가격등을 고려하면 더더욱이나...
2부 - 조승우 마술사 렉처쇼 / 한지우 마술사 게스트쇼
2부의 첫 순서는 아르카나의 조승우 마술사의 렉처쇼였다. 스케치북을 이용한 예언마술, 음료수 예언 마술과 음료수가 이동하는 마술, 수학을 이용한 마술 등을 선보였다. 조승우 마술사가 강의하는 내용을 보니, 이전에도 KUMCC에서 렉쳐쇼를 여러번 진행한 느낌이 들었고 이전의 수업내용들과 일부 이어지는 내용들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간단하면서 효과적인 여러 연출들을 알려주었기에, 대다수의 관객들은 만족하는 분위기. 특유의 QnA 식으로 진행되는 렉처 방식 역시 신선하고 좋았다. 다만 첫번째 스케치북 마술을 제외하면 나름 클래식에 속하는 연출들인지라 개인적으로는 크게 새로운 내용은 없었고, 몇몇 연출은 약간 급조한 느낌이 들어서 아쉬움이 남던 렉처. 솔직히 나는 마술공연보다 이 렉처쇼를 더 기대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음으로는 한지우 마술사의 게스트쇼가 있었다. 한지우 마술사의 단독공연인 'Colors' 액트 중 일부를 30분으로 축약한 버전을 보여주었는데... 흠...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이 역시 나에게는 실망이 컸다.
우선, 연출 구성이나 흐름은 너무 좋았다. 색깔이라는 컨셉에 맞춰 보이는 여러 루틴들이 크게 이질적이지 않고 통일되어 보였고, 하나하나 짜임새가 좋았기 때문이다. 특유의 'A to K'연출 (그중에서도 3을 프레젠테이션하는 방식은)은 역시 한지우구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다만.. 실수가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처음 시작할때부터 본인이 세팅한 테이블의 구성이 무너져서 다시 무대가림막을 세우고 세팅을 해야했고(이동한 스탭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로는 한지우 마술사가 건든 이후에 발생한 것처럼 보였다) 타이밍포스 실패, 주머니에 있던 쉘들 쏟아버리기, 딤블 실수, 피타타 터치 실수 등 다양한 루틴들에서 다양한 실수가 보여진게 너무 아쉬웠다.
사실 실수 자체보다도 이에 대한 대처가 더더욱 아쉬웠다. 실수야 당연히 누구나 할수 있는 것이지만(물론 '해당 행위가 업인 프로'에게는 너무나도 치명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에 대한 대처나 리커버리의 모습에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실수의 현장에서 그가 한 것은 '아무것도 아닌척 능청스럽게 넘기기'도, '연출의 일부인양 연기하기'도 아닌 '당혹과 찡그림'이었다. 이때문에 누가봐도 해당 장면들은 '실수'로 명확하게 각인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너무나 아쉬웠다. 이전 최현우 마술사, 이은결 마술사 등 거장뿐만 아닌 각종 버스킹마술이나 공연 등을 볼때도 못 본 장면을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기에 더더욱 안타까움이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종합 및 총평
종합하면 '기대하지 않은 것에서 큰 만족을 느끼고 기대한 것에서 배신을 느낀 하루'였다.
대학생 마술대회의 경우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수준이 높았으며, 다들 많이 연습한 것이 보여서 너무 즐겁게 즐길 수 있었다. 오프라인에서 카드/멘탈 마술 외 스테이지 무대를 간만에 봤는데, 정말 '돈주고 본것이 아깝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에 반해 렉처쇼와 게스트쇼는 만족보다는 실망이, 행복보다는 안타까움이 더 남았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고는 하지만, 내가 생각한 적정 하한선보다도 낮은 기분이라고 해야하나.. 해당 대회일 점심과 저녁에 둘다 약속이 있는데 중간에 동선낭비하면서까지 시간을 낸것이기에 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조금 괜찮아졌지만 한 3일간은 마술 자체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식어버릴 정도였으니..
그래도 다음에 이런 자리가 있다면, 다시 신청하여 참여할 것 같다.
다시 기대하고 또 실망할지언정, 마술은 이미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마술 > 마술오프라인 행사, 공연, 칼럼 등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0505 문엔트리 - 박민호의 상상의 조각 (0) | 2024.05.05 |
---|---|
20240427 New Door Seminar : Season 0 - 엄준혁 마술사 (0) | 2024.04.28 |
20240305 헤클러 :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2) | 2024.03.05 |
20240114 '패터'에 관한 단상 (1) | 2024.01.14 |
엠비셔스 카드(Ambitious Card)에 관한 단상 (0) | 2023.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