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리뷰] 악의 - 히가시노 게이고

2026. 9. 7. 12:04·기타/서적,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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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 리뷰이다.

 

얼마 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그의 작품들을 다시 하나씩 읽으며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번에 리뷰할 '악의'는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과 함께 히가시노 게이고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히며, 그의 특유의 서술 방식과 이야기 전개를 경험하기 좋아 입문작으로도 자주 추천되는 소설이다. 나 역시 예전에 한 번 읽었던 책이지만, 어느덧 10년 이상 지나 대략적인 흐름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 세부적인 내용은 거의 잊은 상태였다. 덕분에 이번 기회에 다시 처음 읽는 기분으로 펼쳐보았고, 감상을 기록 겸 리뷰로 남겨본다.

 

 

시놉시스

 

유명 베스트 셀러 작가인 히다카 구니히코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발견자는 그의 아내 히다카 리에와 그의 절친한 친구인 노노구치 오사무.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가가 교이치로는 옛 교사 선배인 노노구치와 재회하며 그가 쓴 수기를 토대로 범인을 추리해 간다. 그 과정에서의 놀라운 사실들이 계속해서 밝혀지는데...

 

 

감상후기(강스포 O)

 

인간의 끝없는 '악의'에 대한 탐구

악에는 이유가 없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에서 범인을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약간의 서술 트릭이 있기는 하지만, 추리소설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초반 30–40페이지 정도만 읽어도 범인이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 작품의 묘미는 ‘누가 범인인가’가 아니라, 바로 ‘어째서 범행을 저질렀는가’에 있다. 실제로 초반 3분의 1 정도가 지나면 범인은 거의 스스로 자수하는 수준으로 정체를 드러낸다. 이후의 전개는 범행 동기를 끝까지 감추려는 범인과, 그 이면의 진실을 파헤치는 형사 간의 대결로 이어진다. 기록에 집착하며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만을 남기는 범인과, 그 기록 속 모순과 비밀을 하나씩 파헤치는 가가 형사의 싸움이 중반부까지의 핵심 감상 포인트다.

 

그리고 이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 진짜 이유는 종장부에서 드러난다. 지금까지 독자가 믿어왔던 이야기들이 사실은 모두 진실이 아니었으며, 어느 한 사람의 강렬한 ‘악의’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거대한 거짓말이었음이 밝혀지는 것이다. 피해자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했던 범행 동기는 사실이 아니었고, 안타까운 사연처럼 보였던 과거 역시 철저하게 조작된 이야기였다. 우리가 악인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에게 뒤늦게 사연을 부여하며 ‘사실 이 녀석도 좋은 녀석이었어’라고 감성을 자극하는 흔한 클리셰를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셈이다. 모든 진상이 드러난 뒤 오히려 독자에게는 새로운 의문이 남는다. ‘아니, 도대체 왜 자신을 구원하고 도와준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철저한 모욕을 가했을까?’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작중 인물의 과거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말 그대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끝없는 악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동시에 많은 추리소설과 만화에서 그토록 중요하게 다뤄지는 범인의 ‘동기’라는 것이, 현실에서는 반드시 거창하거나 논리적일 필요도 없고 때로는 아예 이해할 수조차 없는 것임을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누가 죽였는가’를 밝히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죽였는가’를 추적하고, 마지막에는 그 ‘왜’에조차 우리가 기대하는 합리적인 설명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다. 추리소설 매니아는 물론이고,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서술 방식과 일본 추리소설의 문체를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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