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일본의 만화가 유오토 작가의 청년만화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 리뷰이다.
예전에 이 작품이 처음 연재될때 '지동설'에 관해 다룬 작품이란 이야기를 듣고 관심있게 봤었는데, 얼마전 우연히 인스타 스토리에 지인분이 읽고 남긴 소감을 보고 다시 감상. 넷플릭스로 처음에 조금 보다가 삘이 꽂혀서 바로 전권(8권)을 구매 후 감상

시놉시스
종교적 이유로 천문학이 천대받던 시절, 그리고 지구가 온 세상의 중심임을 믿어 의심치 않던 시절.
절대불변의 진리에 의심을 가진 사람들의 진짜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과 그들을 막아서는 신의 대리자들의 억압과 대립을 그리고 있는 작품.
감상후기(약스포 O + 강한 어조 포함)
사유를 멈춘 자들이여.
관성에 안주한 그대들은 타인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러나 폭력은 영원하지 않다.
끝내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은, 언제나 지성이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았거나, 제목과 줄거리만 얼핏 접한 사람들은 이 작품을 단순히 지동설과 천동설의 대립을 그린 역사 만화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작품의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폭력과 대립하는 지성’이다.
세상에는 ‘남들이 다 그러니까’, ‘위에서 시키니까’, ‘예전부터 그래 왔으니까’라는 말로 자신의 사고를 멈추는 사람들이 있다. 미지의 세계를 갈망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무지가 폭력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태도는 분명 문제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그걸 알아서 뭐 하냐?“라는 무지하고 폭력적인 말은 단순한 무관심을 넘어 사고 자체를 거부하는 선언과도 같다. 더 나아가 그것이 폭력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누군가 지적해도 바뀔 의지가 없는 사람들. 그저 사회의 톱니바퀴 하나로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그것이 곧 ‘어른다운 삶’이라고 믿는 나약한 인간들의 모습이다.
반대로 지성은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한다. 질문하고, 탐구하고, 머뭇거리며, 몇 번이고 자신의 결론을 되돌아본다. 효율만 따진다면 결코 좋은 방식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아무 의미 없는 고민으로 끝날 수도 있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 인류의 발전을 잠시 지연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는 말처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전기장이 걸린 도체 속 전자가 수없이 충돌하면서도 아주 조금씩 앞으로 이동하듯, 인류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 그리고 충돌을 반복하며 조금씩 전진해 왔다. 그 과정은 느리고 비효율적일지라도 결코 멈추지 않는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고, 탐구하려는 의지.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지성이며, 우리가 위대한 이유다.
물론 지성이 언제나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 속 수많은 결사대가 보여주듯, 진리를 향한 신념도 절대화되는 순간 또 하나의 체제가 되고, 기존의 폭력에 맞서던 이상은 어느새 또 다른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래서 지성에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는 태도다. 자신의 신념마저 끝없이 검증하고, 새로움이 다시 권위가 되어 굳어지지 않도록 경계하며, 탐구와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 그렇기에 나는 인류가 앞으로도 계속 빛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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