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블랑 만년필을 대표하는 라인업, 마이스터스튁(Meisterstück). 여기에는 POA(Patron of Art), MOA(Muses), 어린 왕자, 세계 일주 등 수많은 세부 컬렉션과 한정판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단연 작가 에디션(Writers Edition)이다. 작가 에디션은 1992년 헤밍웨이를 시작으로 매년 한 명의 위대한 작가를 선정해, 그의 작품과 삶에서 모티프를 얻은 만년필을 선보이는 시리즈다. 오늘 소개할 펜은 그중 1998년에 발표된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작가 에디션이다.
에드거 앨런 포는 19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SF / 미스터리 / 호러를 아우르는 근현대 장르문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특히 세계 최초의 근대 추리소설로 평가받는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은 안락의자 탐정과 1인칭 서술자, 밀실 살인, 마지막에 진상을 밝히는 구성 등 현대 추리소설의 기틀을 마련한 작품이다. 이 밖에도 공포소설 '검은 고양이'와 시 '애너벨 리」, '까마귀(The Raven)'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미 블로그에서 여러 차례 밝혔듯 나는 추리소설과 미스터리소설의 열렬한 애독자다. 언젠가 만년필 컬렉션을 본격적으로 꾸리게 된다면 애거서 크리스티와 아서 코난 도일을 비롯한 추리소설 작가들의 한정판을 모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상태와 조건이 괜찮은 매물을 발견했고, 이 에드거 앨런 포 에디션을 시작으로 작가 한정판 컬렉팅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작가 에디션의 패키지는 전통적으로 책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제작된다. 평소 케이스 자체를 크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지만, 수집을 목적으로 하는 제품에서는 이런 소소한 디테일이 꽤 중요하게 느껴진다. 펜뿐만 아니라 패키지까지 하나의 작품처럼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소장하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몽블랑 에드거 앨런 포 에디션은 현행 마이스터스튁 르그랑, 흔히 146이라 부르는 모델과 비슷한 크기와 구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전체적으로 짙은 청색과 보랏빛이 섞인 마블 패턴의 배럴을 보여주며, 캡 상단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서명이 새겨져 있다.
이 배럴의 색은 단순한 단색이 아니라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깊고 복잡한 색감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아주 오묘하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지나치게 무겁지는 않은데, 이러한 인상이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세계와도 제법 잘 어울린다.



몽블랑 한정판 만년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역시 닙이다. 146 기반으로 제작된만큼 18K, Au 750 금닙이 사용되었으며, 닙 중앙에는 에드거 앨런 포를 상징하는 작품인 'The Raven'에서 모티프를 얻은 까마귀가 새겨져 있다.
참고로 국내에서는 이 작품의 제목을 오래전부터 '갈까마귀'라고 번역하기도 했지만, 갈까마귀는 크기가 작은 까마귀를 가리키는 말이며 일반적으로 Raven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까마귀보다 체격이 큰 까마귀류를 가리킨다. 오랜 번역 관습이 그대로 굳어진 사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보유한 제품은 B닙이다. 팁의 좌우 분할 상태도 나쁘지 않고, 몽블랑 닙에서 종종 언급되는 베이비 바텀 현상도 실사용 중에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진으로 확대해 보면 약간의 흔적이 보이는 듯하지만, 실제 필기에서는 하드 스타트나 잉크 끊김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내가 보유한 다른 만년필들과 필기 굵기를 비교해 보면 그 존재감이 더욱 확실히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유럽제 만년필이 일본제 만년필보다 굵게 써지는 편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몽블랑의 B닙은 상당히 넓고 진한 선을 만들어낸다. 7㎜ 간격의 노트에 일상적인 크기로 글씨를 쓰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다.
흥미로운 점은 닙의 외형만 보면 약간의 스텁 성향이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써보면 오히려 가로획이 굵고 세로획이 상대적으로 얇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스텁닙과는 반대에 가까운 특성이라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독특한 글자 형태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무척 만족스럽다.
현재는 파카 큉크 블루블랙 잉크를 넣어 사용하고 있다. 잉크가 보여주는 차분한 청회색 계열의 색감이 짙은 군청색 마블 배럴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펜의 외관과 필기 결과가 하나의 분위기로 이어진다는 점 역시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아무쪼록 현재 내 만년필 라인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펜이 바로 이 녀석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인 짙은 파랑과 군청색을 중심으로 한 마블 패턴, 몽블랑이라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작가 한정판이라는 상징성,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추리·미스터리 문학의 선구자를 주제로 삼았다는 점까지. 내가 만년필 한 자루에서 기대하는 여러 요소를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단순히 희소하거나 유명한 한정판이어서가 아니라, 내 취향과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겹쳐 있다는 점에서 더욱 애착이 간다. 앞으로 애거서 크리스티나 아서 코난 도일처럼 다른 추리소설 작가들의 에디션을 추가로 만나게 되더라도, 컬렉션의 시작을 함께한 이 에드거 앨런 포 에디션은 오래도록 특별한 위치에 남아 있을 것 같다.
Montblanc Writers Edition
Edgar Allan Poe Fountain Pen
Ref No. 28650
출시 연도 : 1998년
충전 방식 : 피스톤 필러
배럴 : 미드나이트 블루 마블링 프레셔스 레진
닙 : 18K 금닙
길이 : 148mm(캡 빼면 127mm)
최대 직경 : 16mm
잉크 제외 무게 : 30g
한정 수량 : 17000개(단품 14000 + 3종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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