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스페인의 위대한 마술사이자 마술이론가, 그리고 렉처계의 공장장인 다니 다올티즈의 렉쳐 'Fantasma Carta' 리뷰이다. 이 렉쳐 역시 지난 2024년 6월 내한 당시 촬영했던 렉쳐로, 발매되어 나오자마자 구매해두고 대충 본 뒤 방치했던(...) 렉처인데 간만에 생각난 김에 다시 정독.
본 렉처는 '고스트 카드'라는 컨셉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고스트 카드란 그 누구도 카드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카드로, 다니 다올티즈의 렉처를 보면 자주 등장하는 방식인 '관객 한명은 문양을, 다른 한명은 숫자' 골라서 만드는 카드이다. 마술사는 물론이고 관객들조차도 어떤 카드인지 모르기 때문에 컨트롤하는 것이 불가능해보이는 연출을 보여주는 것이 포인트. 본 렉처에서는 이를 이용한 4가지 연출을 소개하고 해법을 알려주고 있다. 아르카나 스토어에서 스트리밍 렉처를 구매 가능하며 가격은 52,000원이고 총 러닝타임은 약 50분.
Fantasma Carta
0. 핵심기법 - SYC
본 연출들에서 사용되는 가장 핵심적인 기법인 SYC기법을 먼저 소개하고 있다. 약자를 풀어쓰면 해법 노출이 될 수 있기에 자세한 설명은 어렵지만, 약간의 세팅으로 고스트카드의 위치를 조정할 수 있게 하는 기법이다. 마술사의 터치나 기술이 들어가지 않으며, 관객이 자기도 모르게 그 카드의 위치를 스스로 조정해버리게 할수도 있는 놀라운 방법.
사실 이 기법 자체는 전혀 새로울 게 없고, 기존 다니 다올티즈의 렉처들에서도 여럿 사용된 기법이기에 처음 보면 실망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기법을 하나의 마술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더블리프트 / 팜 / 컬 과 같은 하나의 무기로 생각한다면 보는 시선이 바뀌게 될 것이다. 특히 기존 이 기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술사의 덱만을 사용해야하거나, 셔플에 제한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무려 빌린덱으로도 해당 기법을 사용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기에 기존에 이 방식을 알던 사람도 얻어갈 것이 있을 것이다.
1. Abracadabra Card
연출) 관객들과 마술사가 덱을 나눠서 섞고 합친다. 관객 두명이 각각 카드를 골라 한명은 문양을, 한명은 숫자를 택하여 새로운 카드를 만든다. 주문을 외우며 카드를 내려놓으면 그 위치에 그 카드가 위치한다.
위의 SYC 기법에 아주 살짝의 변형을 더한 것만으로 가능한 전형적인 스펠링 트릭. 다만 대부분의 스펠링 트릭이 영어 기반이기에 한글로 변형시 억지스럽기 마련인데 그런 것 없이 깔끔하게 연출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논외로 이전에 소개한적 있는 '썸띵 어메이징 인사이드'에서 하나의 스펠링 트릭이 나오는데, 여전히 잘 쓰고 있어서 추천.
2. ACCAN
연출) (처음에 관객과 마술사가 덱을 나눠서 섞고 시작도 가능) 한 관객이 숫자를 생각하고, 다른 관객이 카드를 골라 문양을 고른다. 세 번째 관객이 카드의 숫자(Value)를 정한다. 1번관객이 생각한 숫자만큼 카드를 내리면, 2번관객과 3번 관객의 조합으로 만든 카드가 위치한다.
많이들 좋아하는 아칸에 SYC 기법을 적용시킨 버전이다. 기존의 아칸도 충분히 신기한데 고스트카드까지 사용되니 정말로 어떻게 일어난건지 알아채기 어려운 것이 핵심. 다만 개인적으로는 중간 특정 동작이 설득력이 없다고 느껴져 실제로 해본적은 없다. 해법 자체는 쉽지만 느낌을 살리기가 어렵다고 해야 하나... 개인적으로 다니 다올티즈 식 아칸을 할거라면 역시 아칸 프로젝트 1의 리츄얼 아칸을 할 것 같다.
3. Card Through Table
연출) 관객 두명이 각각 카드를 골라 한명은 문양을, 한명은 숫자를 택하여 새로운 카드를 만든다. 신호를 주면 카드 한장이 테이블 아래에서 나오는데, 이게 바로 새롭게 만들어진 카드이다.
SYC 기법에 재밌는 핸들링 더해 만들어진 연출. 본 렉처에서 유일하게 손기술이 필요한 부분인데, 그마저도 사실 크게 어렵지 않다. 재미난건 본 연출의 특정 손기술을 국내 마술사의 한 렉처에서도 본적 있다는 점. 개인적으로 카드 쓰루 테이블 연출은 유리테이블일때 비쥬얼하게 통과되는 것이 장점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방식도 관객에게는 설득력이 있겠구나 싶던 부분.
4. Ambitious Card
연출) 관객 여러명이 카드를 나눠 가진다. 관객 한명은 카드 문양을 생각하고, 한명은 숫자 하나를 생각한다. 그 후 카드를 다시 모으면서 섞는다.(관객이 섞게 할수도 있다!) 그리고 신호를 주면, 앞서 두 관객이 만든 새로운 카드가 덱의 맨 위로 올라온다.
멘탈리즘이 더해진 느낌의 엠비셔스 카드루틴. 관객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졌기에 그 누구도 정체를 모르는 카드가 관객들이 섞인 덱의 맨 위로 올라온다는 것은 정말 마법과도 같은 일이다. 기존의 엠비셔스 카드루틴이 마술사의 손기술에 기반하기도 하고, 여러번 반복되는 현상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본 연출에서는 마술사가 거의 덱을 건드리지 않는 상황에서 딱 한번 일어나는 현상이기에 결과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연출이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본 렉처에서 가장 좋아하는 연출.
종합 및 총평
간단해보이는 기법으로 얼마나 마법과 같은일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증명한 렉처
렉처에서도 계속 반복되듯 본 렉처의 각 연출들은 그저 핵심기법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줄뿐, 핵심은 결국 SYC 기법이다. 이미 알려져있던 방식임은 분명하지만, 이것을 이렇게까지 응용하여 연출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관객의 절반이 마술인인 다니 다올티즈가 수년간 연출을 해왔다는 점에서도 그 실용성과 위대함이 증명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렉처의 핵심 기법을 보고 실망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생각보다 폼이 많이 들어가기도 하고, 약간은 짜친다고 느낄 수도 있다. 나 역시도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고, 방치해두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당신이 해법을 알기 전에도 그렇게 느꼈는가?
수면 위의 도도해보이는 백조도 물 아래에서는 열심히 발길질을 하듯, 우아하고 신기해보이는 연출을 위해서는 관객들에게 노출되지 않는 선에서 마술사의 지고한 노력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결국 어떤 마술이 좋고 나쁨의 평가는 관객에게 달려있으며, 그들이 평가하는 것은 겉에 드러난 연출뿐이다. 더블리프트나 손기술을 쓰면 우아하고, 러핑이나 듀플리케이트를 쓰면 나쁘다고 평가하는 것은 자제해야한다.(물론 본 렉처에서 그런 기법을 쓴다는 건 절대 아니다.) 세팅이나 도구, 기믹이 없는 마술이 물론 마술사입장에서 더 배울 것이 많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건 사실 준비하기 귀찮은 게으름을 포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손기술도 거의 필요하지 않고, 관객이 자유롭게 덱을 섞기도 하는데 마술사의 터치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놀라운 마법을 찾는 이라면 추천하는 렉처. 처음에는 실망할수 있지만, 끝까지 영상을 보고 나면 확실히 건져가는 것이 있을 것이다.
p.s.) 다만 약간 비싼 가격은 소비자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게 느껴지는 흠이긴 하다. 특히 기존의 아칸프로젝트 / 카오스 프로젝트 등으로 치면 하나의 분량값인데 가격은 거의 4-5배니까...
총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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