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몇년 전 마술사 PH의 유튜브에 이런 영상이 올라온 적이 있다.
마술사들도 어려워하는 손기술 Top 5라는, 약간은 어그로스러운 제목을 가진 이 영상에서 PH 는 DPS, Future reverse 등 다양한 손기술을 소개한다. 그중 당당히 2위를 차지한 기술이 바로 'Undertow'. 영상에서도 나오듯 실전성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쓸 상황이 나온다면 정말 마법과도 같은 기술이다. 그리고 이 기술이 실린 책이 댄 앤 데이브 형제의 'If an octopus could palm' 이다.
2010년 한정수량으로 공개 이후 빠르게 절판된 이 책은 소위 '기술쟁이'들에게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고, 인기에 힘입어 10주년 기념으로 재발매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을 마술사 PH가 한글로 번역하여 발매된 책이 이번에 리뷰할 '만약 문어가 팜을 할 수 있다면'이다. 90페이지의 분량의 하드커버와 문어팜 덱이 동봉되어 있고, 원작에는 없던 50분 가량의 QR 코드 해설이 담겨있다. 가격은 15만원.
문어팜 리뷰
우선 리뷰에 앞서 한가지를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이 책은 대단히 비실용적인 책이다. 이는 번역자인 PH도, 책 서문의 축사를 담당한 마술사 토니 창도, 그리고 원작자인 D&D 형제도 분명히 언급하는 부분이다. 관객 앞에서 자유자재로 써먹기 좋거나 비교적 쉬운 노력으로 가성비를 낼 수 있는 기술들이 실려있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의 방점은 거기에 찍혀있지 않다. 말 그대로 '문어가 팜을 할 수 있다면 이럴 기술을 쓰지 않을까?'라는 느낌처럼 괴랄한 난이도들의 팜 기술을 다루고 있고, 이 기술들을 연습하는 과정의 재미와 연습 그자체에 집중된 책이다. 그런만큼 평소의 리뷰 관점 중 하나인 '실용성'은 제외하고 평가하도록 하겠다.
이 책에서는 총 16가지의 팜 기술을 소개한다. 새로운 방식의 탑카드 팜, 바텀카드 팜 등 팜 자체뿐만 아니라 이미 팜된 카드를 반대손의 팜 포지션으로 바꾸는 팜 트랜스퍼, 팜한 카드를 원래 위치로 옮기는 팜 리커버리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룬다. 이들을 전부 리뷰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에 개인적으로 몇가지만 다루면 아래와 같다.
세팔로 팜(Cephalo Palm) / 옥토머스 팜(Octomus Palm)
기술 : 탑카드를 왼손에 뒤집어서 팜하는 기술 / 오른손에 뒤집어서 팜하는 기술
이 책에 실린 몇 안되는 실용적인 기술. 난이도 자체도 그리 어렵지 않고, 일반적으로 팜될때와 카드가 앞뒤가 바뀐채로 팜되기 때문에 고유의 메리트가 있다. 사용처가 어딘지는 사용자 나름이겠지만, 나는 카드 투 월렛이나 다니엘 가르시아식 CTW를 보여줄때 활용하고 있다.
케스케이드 컨트롤(Cascade Control)
기술 : 케이케이드를 하는 과정에서 고른 카드가 맨 위로 컨트롤된다.
PH가 애용하는 기술. 무심한 동작 속 컨트롤이 포인트인데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하기 어려워서 아직 실전에서는 못보여주는 중이다.
피핑 팜(Peeping palm)
기술 : 관객이 픽(peek)한 카드를 DPS하는 기술
일반적인 DPS가 '관객이 고른 카드를 덱 안에 넣는 과정에서 카드를 팜'한다였다면 이 방식은 '관객이 본 카드를 바로 팜한다'가 포인트라서 반박자 정도 빠른 느낌이다. 논외지만 예전에 한 마술모임에서 본 기술이었고 기발하다 생각했는데 원작이 이거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네.
언터 토우(Undertow)
기술 : 탑 카드를 뒤집는 과정에서 팜한 카드와 바꾸는 기술
그 유명한 언터 토우이다. 원리 자체는 엄청 심플한데 감 잡기는 너무나도 어려운 기술. 마치 다마소패스 같은 느낌이랄까. 대부분의 독자들이 이 책을 산 이유는 이거때문이겠지만, 나는 과감히 포기했다.(라기엔 여전히 계속 연습중이다. 다만 실전에서 보여주려면 한참 멀은듯)
플럼버 팜(Plumber Palm)
기술 : 오버핸드 셔플 중 카드를 오른손에 팜하는 기술
데릭 델가지오가 만든 기술이다. 이 역시 섞는 중에 카드를 팜하기 때문에 유용한 기술. 나는 기존에 덱 중간의 카드를 오른손에 팜하고 싶으면 마하트마셔플-탐팜 의 두단계를 거쳤는데 이 기술을 이용하면 한번에 팜이 가능해서 활용중이다. 팜될때 방향이 반대로 바뀌는건 아쉬운 점.
한가지 정말 좋았던 점은 PH의 QR 영상 해설이다. 기술에 집중된 책인만큼 활자로만 보는것과 실제 영상으로 보는 것은 배우는 입장에서 큰 차이가 있다. PH는 이 책에 실린 모든 기술을, 그것도 본인이 하기 어려운 기술이면 김슬기 마술사의 도움까지 빌려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거기에 본인이 연습할때 체득한 팁, 본인만의 바리에이션 등 다양한 첨언까지 있으니 배우는 입장에서는 감사할 따름. PH 본인이 번역한만큼 이 책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던 포인트.
종합 및 결론
팜을 좋아하는, 카드 기술쟁이라면 필수의 책
거듭 언급하듯 이 책이 결코 실용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당장의 실용적인 기술을 찾는다면 더더욱 추천하지 않는다. 건질 것은 몇개의 기술뿐이고(그마저도 대체제들이 있는), 2010년 처음 발매되었던 책처럼 한정판이지도 않은 책을 15만원이나 되는 돈을 주고 구매하는 것은 어쩌면 낭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드기술을 좋아하고, 마술을 연습하는 과정에서의 성취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구매한 것에 후회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영감을 바라는 사람, 매번 같은 기술과 마술에 매너리즘을 느끼던 사람에게 좋은 도전과제가 되어줄 책. 간만에 본 '좋다기보단 재밌던 마술 서적'이었다.
총점)
★★★★★(영감을 바라거나 연습 자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
★★☆☆☆(당장 쓸 실용적인 기술들을 원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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